brunch

"배움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어릴 땐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익히는 것에 부담을 느끼시는 부모님께 이런 말을 종종 했습니다.


퇴근하고 조금씩 하면 되지 않냐고, 부모님 세대가 스마트폰이나 새로운 기술을 어려워할 때 속으로 답답해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직장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부모님의 말씀이 공감됩니다.


예전만큼의 열정과 집중과 시간을 배움에 쏟기 힘들다는 것을 느낍니다.


배움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저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저만의 방식으로 '배움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을 해석하니, 다른 뜻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 새로운 걸 배우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한정적이라는 것

뇌에도 용량이 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처럼 특정한 저장 공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한정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들은 점점 더 많아지죠.


운전, 가전제품 사용법, 건강 관리, 금융 지식, 보험, 세금, 스마트폰 활용, 집안 수리, 요리까지…


살면서 익힌 것들은 수없이 많고, 이런 정보들은 계속 쌓입니다.


그렇다면 계속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뇌에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쌓는다는 뜻인데,


컴퓨터도 용량이 꽉 차면 삭제하지 않으면 더 저장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기억도 결국 어딘가에서는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망각할 수 없다.


컴퓨터는 필요 없는 파일을 직접 골라 삭제할 수 있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버릴지 선택할 수 없고, 자연스럽게 망각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알았던 정보가 어느 순간 흐릿해지고,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겁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뇌는 더 중요한 정보들을 우선적으로 남기고 덜 중요한 정보들은 서서히 지워갑니다.


하지만, 내가 원할 때 빈 공간을 마련할 수 없기에 공부의 시기는 자꾸만 늦춰집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배움에는 분명 시기가 있을 수 있지만,


배우는 방식을 바꾸면,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억하지 않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뇌가 아니라, 기록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죠.


▶ 삼성 노트: 제가 사용하는 갤럭시 스마트폰의 기본 앱입니다.


어디서든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기록해 두면,

4년간 쌓아온 삼성 노트 기록

굳이 외우지 않아도 필요할 때 언제든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4년간 사용했는데, 꽤나 많은 정보가 쌓였습니다!


▶ Logseq: 컴퓨터와 휴대폰을 연동하여 사용하는 메모 프로그램입니다.

Logseq 페이지1
Logseq 페이지2


PARA라는 방법론을 활용하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페이지 단위로 정보를 정리할 수 있어, 필요할 때 빠르게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죠.


처음엔 단순한 메모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점점 활용법을 익히면서 뇌의 확장판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보다 기록이 낫다


배움에는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배우려는 마음과 그 배움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뇌가 기억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지만, 기록할 수 있는 양은 무한합니다.


기억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빠르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뇌에 모든 걸 저장하려 애쓰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요?


배움의 한계를 느낄 때, 기억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이가 들어도 배움을 이어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저만의 방식을 소개드렸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전엔 그냥 흘려들었던, 부모님이 하셨던, 말씀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저도 부모가 되어가나 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원, 거인의 어깨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