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를 멀리하게 된 이유
의미없던 시간이라 생각했던 순간들도 기록으로 남으면 소중한 자산이었다.
고교시절부터 시작한 대외활동으로 학교 안에서 교과서와 마주하는 시간보다 버스터미널 시간표를 탐독하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일찍부터 일정을 기록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써왔다.
날짜마다 그어진 네모난 공간 속에 빼곡하게 대외활동 일정이 차는 날이면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의 뿌듯함을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오늘도 잘 살았다."
나름 고등학생때까지만 해도 작가의 꿈을 놓지 않고 있었던 터라 문득 떠오르는 글감이 있다면 행여 놓칠까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잽싸게 흔적을 남겨두었다.
그렇게 검은색 투박한 활자들이 다이어리 달력 부분을 가득 메울 때가 되면 한 해가 저물었다.
"올해도 잘 살았다."
삶을 기록하기 위한 노력이 나에게 기록의 의미로 채워졌다.
그러나 나는 근 몇 년간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 그 시점은 직장에 들어가고부터였다.
회사에서는 뭉툭한 두깨의 다이어리를 매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첫 사회생활 땐 그간 단련해 온 기록하는 습관을 살려 이토록 광활한 여백에 얼마나 많은 나의 일정들을 채울 수 있을까 설렘이 앞섰다.
그대가 예상한 대로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좋아서 만들고 채워넣은 일정은 뿌듯함과 보람으로 돌아왔지만, 해야하고 하지 않으면 조직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정들은 부담이었고, 끝마치면 안도의 깊은 한숨이 절로나는 사활의 기록들이었다.
고통과 아픔도 삶의 기록이 될 수 있었거늘..
돌이켜보면 이른 아침 출근해 남들보다 먼저 사무실 컴퓨터를 켜고, 늦은 밤 남들보다 늦게 컴퓨터 종료버튼을 눌렀던 그 시간들도 돌아보면 절절했지만 열심히 살아냈다는 기록들이었다. 다만 왜 기록해 남기지 않았느냐 물어본다면 나보다 남들의 개인정보가 너무 많았고, 회사의 비밀들이 많았다.
그리고 "용기가 없었다" 변명하고 싶다.
간혹 주변 지인들에게 입사지원서 내 자기소개서 첨삭을 요청받곤 한다. 게으름이란 이름의 풍파 앞에 녹이 슬어버린 글 실력으로 요청받을 때마다 나름 열심히 숫돌로 날렵하게 칼을 갈아 재단해준다.
"본인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기술하시오"
직장인들의 책상을 보면 모니터 위 아래로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수십 개가 반듯하거나, 정신없이 휘갈겨놓은 글자들을 담은 채 나풀거리고 있다. 사회생활에 전혀 안목이 없었던 시절, 망각과 싸우는 치열한 전투 현장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나도 저런 일 잘하는 멋진 직장인이 되어야지" 태평한 다짐을 했던 나는 전투현장에서 벗어나며 그 날들을 반추한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 문항 앞에서 도저히 자신의 장단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은 '메모하는 습관'을 소재로 글을 이어나간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오는 물건 마냥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거리가 툭툭 내 눈앞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 어느 직장이든 '기록의 습관'은 환영받는다.
소재가 너무 식상하니 다른 소재를 쓰면 어떨까 제안하지만 자기소개서에 늪에 빠진 이들은 쉽사리 그간 써둔 활자를 지워낼 자신이 없는지 깜빡이는 커서만을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다.
자기소개서라고 떡하니 제목이 달린 여백 위에 양심을 접어두고 없는 걸 지어내라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내키진 않지만 업무의 정확한 처리를 위해 '메모하는 습관'을 지닌 인재로 포장하기 위해 사실에 근거한 MSG를 보일 듯 말 듯 첨가해준다. 나는 그렇게 한 명의 개미를 개미굴 밖으로 밀어냈다.
뒤늦은 삶의 기록을 시작했다.
원고지와 다이어리를 멀리한 시간만큼이나 유려했던 필력은 나의 손을 떠나갔지만 그래도 기꺼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펜을 다시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