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공 처녀와 까마귀 3

by Tigerwood

18_뱃사공 처녀와 까마귀(11)


“잡아라! 이것이 계약의 돌이다!

나이울려의 목소리는 도깨비의 거부할 수 없는 힘 그 자체로 아이월에게 내리꽂혔다. 그의 말은 강력한 파동이 되어 그녀의 존재 깊숙한 곳까지 몰아쳤다.

‘숨 쉴 수가 없….’

그녀는 숨이 멎는 고통에 당황할 틈도 없이 돌을 꽉 쥐었다. 처음에 돌은 그녀를 감지하려는 듯 짧고 빠르게 맥동하더니, 곧바로 손바닥 안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북부의 큰족 도깨비와 인간의 계약이 맺어졌다! 곧 고구려의 마지막을 보게 될 아이야, 꽤 오래 너와 네 후손은 압록강을 건너다닐 운명이다. 더 이상 건널 수 없게 되는 그 후로도 까마귀는 오랫동안 '네 이름' 곁에 남아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그는 예언을 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 고구려는 역사라는 이름 속으로 한순간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뱃사공 처녀, 작년에도 아기를 업고 노를 젓더니, 아직도 그 아기를 업고 있는 게요?”

“아이고, 손님도 참. 작년에 보신 아기는 첫째 아이고, 등에 업힌 아기는 둘째랍니다.”

나라의 명맥은 끊겼지만, 그 땅의 사람들은 여전히 압록강을 오가며 힘겹게 삶을 이어갔다. 등에 업은 아이가 하나에서 둘로 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뱃사공 처녀’라 불렀다. 마치 그리 불러야만 사라진 고구려의 명맥이 이어지는 듯 안심하며, 마음껏 농담하고 웃었다.

고구려에 속했었던 집 잃은 부족들이 도적 떼가 되어 나루터를 위협하기도 했지만, 그곳은 이미 전설이 깃든 금기의 땅이었다. 겁 없이 나루터를 습격하는 자가 나타날 때면, 하늘 높이 날던 큰 까마귀가 벼락처럼 내려앉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모가지를 따버리곤 했다.


“그곳 하늘엔 까마귀 왕이 날아다닌다.”

“그곳 강에는 까마귀 왕의 그림자가 떠다닌다.”

“가지 마라! 도적인 할아버지가 그리 말했다.”

“가지 마라! 도적인 아버지도 그리 말했다.”

“그곳만은 안 된다고, 도적인 내 허리춤을 어머니가 잡으셨다.”




19_아이단

세월은 계속 흘러, 이제는 뱃사공 처녀의 손자 아이단이 노를 잡았다.

“할아버지,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저희를 보살펴 주시고, 손님들의 여정이 무사하도록 지켜주십시오.”

그는 노를 젓기 전, 하늘 높은 곳에서 자손들을 지켜보고 있을 까마귀 왕을 향해 먼저 기도를 올렸다. 옛 고구려 땅을 오가는 손님들은 줄었지만, 압록강을 건너려는 이들은 모두 이곳 나루터로 모여들었다.

“뱃사공 총각, 나도 왕에게 한 잔 올리고 싶네.”

배에 오르기 전 북쪽 하늘의 까마귀를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은, 무사 안녕을 비는 그들만의 의식이 되었다.

고수레, 고수레. 고구려의 강을 지키시는 까마귀 왕이시여! 부정한 것을 물리치시고,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고수레…!”

손님들의 기도가 끝날 무렵, 그들 위로 거대한 까마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쓱 지나갔다.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손자 아이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증조할아버지, 저희를 항상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인사를 올리고 오랫동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할머니….”

“할머니도 함께 지켜보고 계시는 거죠?”

그의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시선이 하늘의 거대한 그림자를 지나, 강 건너편 아련한 안개 속 어딘가를 향했다. 마치 그곳에 그리운 할머니가 서 계시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그 이야기를…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듣고 싶어요. 할머니…”





08. 살점 속의 꿈

'11시라니....'

회사에는 병가를 냈다. 이렇게 늦게 일어난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며칠 전, 엄마만 믿고 가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생각했다.

'뭐지, 대체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꿈에 나오시다니....'

"앗!"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던 그 순간, 끔찍한 복통이 몰려왔다. 끝을 세운 손가락으로 말랑말랑한 배꼽 위의 살을 푹 쑤셔대는 것 같았다. 그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방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면서, '이대로 죽고 말 거야.'라는 공포가 뇌를 마구 흔들어댔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에야, 죽는 게 나을 지도 몰... 라...'

"아가! 이놈아! 제발, 정신 차려라!"

어릴 때 죽은 어머니의 성난 고함이 귓가를 찢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가, 까맣게 정말 까맣게 잊고 만 세 번째 이야기 <뱃사공 처녀와 까마귀>가 생생히 떠오르는 게 아닌가.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미친 듯이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저절로 키보드를 탁탁 누르는 동안, 몸도 마음도 중력의 당김에서 벗어나 우주로 날아가는 기분에 빠져 들었다. 아니, 이건 까마득하게 잊은 엄마 품에 안긴 느낌이 더 맞을 것이었다.

"좋다... 좋다.... 기분이 좋다!"

몸이 좌우로 살살 흔들리는 상태로, 반복하여 좋다고 흥얼거렸다.


꼬르륵, 꼬르륵.... 내가 허기짐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 11시였다. 그때야 허리가 욱신거렸다. 대체 얼마나 오래 글을 쓰고 있었던 걸까. 일어서자마자 오줌이 터질 것 같아 화장실로 달려갔다. 쏴아아...!

'한 끼도 먹지 않고 지금까지 글을 쓰다니.... 그대여, 인제 그만 계약에서 풀어주시면 안 될까... 요?'

피식 웃으며 속으로 말하자, 팬티를 올리기도 전에 긴장이 갑작스레 둑이 터지듯 풀렸다.

눈곱만큼의 근거 없는 기대와 부풀어 오르는 희망에 달라붙어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려고 했다.

'다음은... 다음은....'

애타는 마음이 잔음처럼 남아 있던 바로 그 순간, 꿈이 찾아왔다.

"얘야, 어쩌다가 이렇게 많이 찢어졌니? 할미가 깁는 것도 이젠 지치는구나."

내 눈앞에는 핏빛으로 붉게 물든 살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살점에 파묻힌 채, 처음 본 할머니와 대화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해줘야지. 누가 해주겠어요. 그런데 왜 제 손가락이 한 개도 없나요?"

나는 잘려 나간 손가락을 확인하려는 듯, 피 묻은 팔을 들어 올렸다. 찢긴 살점이 투두둑 떨어졌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애타는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는 붉은 살점에 파묻힌 채 죽어갈 뿐이었다.

"할.. 머... 니...."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목소리가 찢겨나간 목구멍 안쪽에서 억지로 짜낸 듯 가늘게 실지렁이처럼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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