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장승 1화: 그 시작

by Tigerwood

출근하는 중 어지럼증으로 인해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누군가를 칠 것 같은 나를 위협하는 불안. 앞 차에 바짝 붙어 골목을 들어가던 중, 길가에 서 있던 노인이 불현듯 손을 들고 내 차 앞으로 쓱 지나쳤다.

‘젠장, 저 미쳤나!’

순간 사람을 친 줄 알았다. 경적도 울리지 못한 채 놀란 마음으로 그 자리를 서둘러 지나쳤다. 어떤 충격도 없었다. 노인은 아무 일도 없이 분명 지나쳤지만, ‘진짜 사람을 친 거 아니야?’ 하는 불안이 일하는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14. 오후 7시 49분

“부장님! 이제 정신 차리셨어요?”

박 대리의 억척스러울 정도로 생생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나는 그만 당황했다.

‘여기는 어디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걸까?’

하얀 천장 아래, 분주하게 오가는 발걸음 소리. 낯선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박 대리의 현실적인 말들로 미루어 보건대, 나는 아직 꿈의 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과로 때문이라는데 의식이 없으셔서, 병원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도깨비님은 어디에 계신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함께 여행하던 그 존재를 찾았다. 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경고가 뇌를 때리는 것만 같아, 급격히 공포스러워졌다.

“네? 도깨비요? 부장님, 여긴 응급실입니다. 회사에서 쓰러져 여기까지 오신 거, 기억 안 나세요?”

“응? 응급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꽤 오랜 날들을 돌아다닌 것 같은데, 그 여정의 파편조차 좀체 기억나질 않았다. 더구나 박 대리가 응급실이라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이… 꿈이었구나. 하지만 도깨비가 나에게 잘해 준 이 기분은 대체 뭐지….’

기억나지 않는데도 잠에서 깬 것이 몹시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는 눈 뜨지 않아도 좋으니, 그곳에서 영원히 표류해도 좋을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두리번거리는 시선 끝에 벽시계가 들어왔다. ‘7시 49분’.

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환자를 옮기고, 옆 침상 환자는 링거를 맞고 있다.

내 왼팔에 꽂힌 바늘을 통해 차가운 링거액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코피를 흘렸는지 왼팔 소매와 옷에는 피가 묻어 있다. 나는 숨이 막혀왔다. 이 모든 현실의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뇌가 현실을 거부하는 섬뜩한 느낌.

‘앗! 손가락이 왜 아프지?’

그때 벌에 쏘이듯 손가락이 화끈거렸다. 화끈거리는 오른손을 들었다. 새끼손가락에는 여전히 실이 묶여 있었다. 실은 거짓이 아닌 진실인 양 응급실 입구를 향해 팔랑거리고 있었다. 실이 가리키는 그 너머에는, 열두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다쳤는지 절뚝이며 여 경찰관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저 애가 혹시…?’

순간 가슴이 설렜다. 실이 아이의 몸에 직접 닿아 있지는 않았으나, 실이 가리키는 예리한 방향은 분명 현실이라는 지도 위에 박힌 다음 임무의 지표 같았다. 새끼손가락은 짧은 실에 이끌려 경련하듯 계속 까닥거렸다.

새끼손가락 너머로 여 경찰관이 근심 어린 눈으로 아이를 살피고 있었고, 간호사는 다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이 지독히도 현실적인 응급실임을, 나는 그제야 마지못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호기심이 일었다. 저 어린아이가 이 심야의 응급실에 실려 온 사연은 무엇일까.

내 호기심을 부추기는 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담당 의사의 냉정한 퇴원 지시에 나는 응급실을 나서야만 했다. 그때였다.

“이름이 뭐야?”

뒤로 간호사가 여자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이름을 묻는 게 들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응급실 자동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네가 이름을 말해줘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잖니. 무서워 하지 않아도 돼.”

곁에 선 여 경찰관이 여자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최대한 따스한 어조로 거들었다. 잠시의 정적 끝에 힘 없는 목 메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희… 홍 미희예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성씨를 듣자마자, 나는 맥이 탁 풀리는 실망감을 느꼈다.

‘홍씨라고?’

내가 기다렸던 대답이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기대감이 허무하게 끊어졌다. 나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미련 없이 응급실의 차가운 공기를 뒤로하고 떠났다.


15. 오후 9시 54분

“박 대리, 많이 먹게. 자네가 내 옆에 있어 주어 정말 고맙네.”

“당연한 걸요. 부장님, 응급실까지 오신 분이 잘 드셔야죠. 제가 잘 구울 테니 걱정하지 말고 드십시오.”

퇴원 절차를 밟자마자 바로 온 고깃집이었다.

벌건 목살이 집게에 집혀 뜨거운 불판 위에 올려진다.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 지글지글.

“우욱. 욱.”

나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컥 올라오는 역겨움을 손으로 막은 채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리의 찬 바람에도 구토가 진정되지 못하고 쏟아졌다. 토사물에는 명백히 찢겨나간 걸로 보이는 검붉은 살점들이 섞여 있었다.

‘시간이 없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끔찍한 잔상에 이어, 이야기의 제목들이 번개처럼 스쳤다. 곧 갈가리 찢긴 사람 살점을 입에 문 새까만 형체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살려줘!’

나는 그 극한의 공포 속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노인의 처절한, 끝내 소리치지 못한 절규를 짧은 섬광처럼 들었다.

“웩! 왜엑!”

피 냄새의 비릿함이 숨에 이끌려 코로 들어왔다.


모든 이야기의 첫 번째 이야기였던 내가 써야 할 그 이야기 <돌장승과 세 호랑이>는 꽤 길다. 1부는 <돌장승>, 2부는 <세 호랑이>로 나누어 올리려고 한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 한 이야기만으로 당분간 이 기묘한 현상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




1부. 돌장승


01_노인의 죽음

고구려 유리명왕 이십일 년, 하땅.

험준한 산맥에 둘러싸인 이 마을은 스무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다. 노인과 여자를 제외한 건장한 장정들은 사냥에 나섰고, 남은 이들은 척박한 땅에서 채집과 밭농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사냥은 빠르면 이틀, 길면 이레가 걸리는 고되고도 위험한 생존 방식이었다.

“엄마… 엄마, 아빠는 언제 와요?”

밭에서 일하는 엄마의 치마폭에 여자아이가 착 달라붙어, 사냥 나간 아빠가 보고 싶었는지 쉬지 않고 졸랐다.

“이것아, 그렇게 아빠! 아빠! 찾으면, 아빠가 노리는 노루가 보채는 소리를 듣고 도망치겠다. 쉿…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금방 오실 거란다.”

이곳은 호랑이로부터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험준한 지형이었다. 다행히 마을을 둘러싼 울창한 산 주변에는 세 마리 호랑이의 넓은 영역이 나뉘어 있었으나, 지금껏 녀석들은 단 한 번도 마을로 내려와 가축을 해치거나 사람을 위협하는 일은 없었다. 특히 세 호랑이 중 가장 젊은 수컷 호랑이는 몸집과 기세가 남달랐지만, 오히려 마을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그러나 그랬던 그 호랑이가 며칠 전부터 마치 먹을 것이 없는 한 겨울밤의 굶주린 들개떼처럼 마을 주변을 끈질기게 맴돌았다.

사내들이 사냥을 나간 지 벌써 사흘째 되는 밤이었다. 어둠이 마을을 덮쳤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 며칠간의 극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드디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했다. 초승달마저 구름에 완전히 가려진 깊은 산속 마을은 숨 막힐 듯한 칠흑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긴장으로 인해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멍! 멍멍! 멍멍… 멍….”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한참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비명 한번 없이 잠잠해졌다. 여인은 잠결에 들은 개 짖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개에게 밥을 주러 간 여인은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했다. 밥그릇 옆에 피범벅이 되어 엉겨 붙은 개털 몇 가닥만 남은 잘린 목줄이 버려져 있었다. 여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방으로 기어가다시피 도망쳐 이불속에 숨어들었다.


그날 밤 역시 칠흑 같은 어둠에 파묻혀 있었다.

“멍! 멍! 멍멍… 멍….”

시끄럽게 짖던 개소리가 곧 잠잠해졌다.

“호… 호랑이가… 나타났다!”

얼마 뒤 문밖에서 공포에 질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깽—!”

뒤이어 들린 소리는 마당에서 키우는 개가 단번에 물려 죽는, 너무도 깔끔해서 오히려 잔인한 단말마였다.

한때 날렸던 사냥꾼이었던 노인은 기이한 침묵 속에서 번뜩 정신을 차리고 깜깜한 방에서 더듬더듬 활을 찾았다. 밤눈이 어두워 잠시 헤매는 동안, 문밖에 서 있는 거대한 호랑이의 존재를 느꼈다.

방문에 비친 그것은 호랑이 머리 그림자. 방문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그림자였다. 노인은 방안을 가만히 훑어보는 소름 돋는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내뱉는 숨결이 나무문에 닿아 거칠게 찢어지는 소리로 들려왔다.

노인은 열 살부터 사냥을 배웠고, 셀 수 없이 많은 짐승을 죽였다. 사냥에서 손을 놓은 지 여러 해가 지나,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 살았다고 자신을 다독여왔었다. 하지만 수많은 짐승을 죽여온 사냥꾼에게도 그날 밤, 그 공포는 예외였다.

방문을 가득 채운 호랑이 그림자와 홀로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노인의 숨은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목구멍이 막혀 터지려는 순간, 하늘이 도왔는지 호랑이가 고개를 돌려 사라졌다. 호랑이의 꼬리가 문을 둔탁하게 툭 치면서, 그 충격으로 무릎을 꿇고 있던 노인은 의식을 잃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님, 밥상 가지고 들어가요.”

다음 날 아침. 며느리가 밥상을 들고 방에 들어섰을 때 마주친 것은 시신이라기엔 너무나 기괴한 시아버지의 형상이었다.

노인은 눈알이 뒤집힌 채 고개를 뻣뻣이 들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목젖 깊이 보이도록 혀를 입 밖으로 길게 흘린 채였고, 두 손은 공손하게 모아 무릎 앞에서 비는 듯한 모습이었다. 방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공포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굳어버린 모습. 그것은 단순히 공포에 질려 죽었다기보다는, 무언가에 마지막으로 간절히 용서를 구하는 것 같은, 애처로운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자세였다.

“꺅—!”

혼절한 며느리 얼굴에 엎어진 밥상의 종지가 핑그르르 돌다가 달라붙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장례를 지켜보지 못하고 몇 날 며칠 동안 몸져누워 사경을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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