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장승 5화: 도깨비의 장난

by Tigerwood

11_무너진 돌탑

다음 날 아침. 마을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었다.

“영감, 영감! 헉헉… 이리 좀 나와보소. 큰일 났소… 헉헉… 호랑이를 막아주던 돌탑이… 무너졌구려!”

대문을 박차고 들어선 할멈이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당산나무 아래, 예전 보리의 간절한 정성이 담겨 마을의 수호 탑이 되고 있던 돌탑이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느 잡놈이 마을 수호 돌탑을 장난으로 허물었어? 당장 끌어내서 혼꾸멍을 내야지!”

영감은 목청을 높여 누구든 들으라고 크게 호통을 쳤다. 호랑이가 무너뜨렸는지, 바람에 쓰러진 건지 쉽게 알 수 없었다. 걱정하는 할멈을 달래려던 영감은, 결국 아침부터 당산나무로 나섰다. 막상 무너진 돌들을 다시 쌓으려니 붉으락푸르화가 치미는 표정이었다.

“흔들거리면 안 되잖나! 저 돌은 밑으로 내려놓고, 저걸 들어 올리라고!”

그는 사냥을 나가지 않은 사내 둘을 불러 돌탑을 다시 쌓게 했다. 두 사내가 달라붙어도, 무너진 돌탑을 원래처럼 올리는 데 반나절은 족히 걸렸다.


“와! 이거 봐! 호랑이 발자국이다!”

아이 둘이 당산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봐봐, 내 발보다 훨씬 크잖아!”

호랑이라는 말에 영감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땅 위에 큰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호랑이 발자국이었다.

곧장 발자국에 대한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무너진 돌탑과 호랑이 발자국이라니— 되돌아온 호랑이가 마을에 남기는 무언의 선전포고처럼, 두려움이 순식간에 마을을 집어삼켰다.

그날 밤부터 사냥을 나가지 않은 두 사내는 어쩔 수 없이 당산나무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마을을 지켜야만 했다.


12_도깨비 놀이

대나무 창 두 자루를 양손에 든 젊은 사내와, 멧돼지 털 조끼를 입고 칼을 찬 주름진 사내가 모닥불을 피웠다. 그들은 활과 화살을 옆에 세워두고 언제든 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였다.

“형님, 아무렴 우리가 호랑이를 죽이는 사냥꾼인데, 우리 마을이 어째 그깟 호랑이한테 단단히 콧대를 꺾이고 있습니다. 그려.”

젊은 사내가 창으로 허공을 찌르는 시늉을 방정맞게 하며 투덜거렸다.

“동생, 복수에 눈먼 호랑이는 우습게 알면 안 되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네.”

주름이 자글거리는 형님은 동생에게 주의를 주긴 했지만, 두 사냥꾼에게 곰도 호랑이도 그저 사냥감일 뿐이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겁이라곤 없던 두 사내가 모닥불 앞에서 농을 주고받았다.

“오호라, 무슨 재밌는 이야기 중인가? 나도 좀 듣고 싶은데 끼어도 되겠나?”

당산나무 뒤, 짙은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 하나 없이 낯선 사내가 성큼 다가왔다.

“이 야밤에 대체 누구냐?”

바짝 긴장한 젊은 사내가 창을 꼬나들었다.

“긴장하지 말게 친구. 난 그저 함께 놀고 싶어 온 것뿐이라고.”

그는 도깨비였으나, 두 사내는 알아보지 못했다. 도깨비는 윗옷도 없이 맨몸이었고, 머리에는 낙엽을 눌러 만든 기묘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어이없는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밤공기 정도는 끄떡없다는 기세였다.

“너… 넌… 뉘시냐! 더… 가까이… 오지 마시오!”

주름진 사내는 그새 입술이 얼어붙어 떠듬거렸다. 활시위를 제대로 당기지 못하고 허둥댔다.

“이런… 왜 이리 떠는 건가? 내 친구들이 추워하니, 내 걱정이 ‘항아리’ 가득한걸.”

도깨비는 눈 깜짝할 새에 두 사내의 창과 활을 빼앗더니 당산나무 가장 높은 가지 위로 던져버렸다. 큰족 도깨비 사이에서는 걱정거리를 항아리에 담아두라곤 하는데, 이는 느긋하고 근심 없는 그들을 잘 드러내는 말이었다.

“내 친구여, 밤이 추운가 보군. 자, 내가 따뜻하게 해 줌세.”

그는 두 사내의 어깨에 억지로 팔을 걸쳤다.

“후우— 후— 우—”

두 사내의 얼굴에 번갈아 가며 숨을 훅훅 불어넣자,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오르고 한겨울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몸이 뜨끈뜨끈하지 않은가?”

“네네… 방구들에 누운 것처럼 뜨끈하니 좋습니다.”

젊은 사내는 몸이 녹아 벌써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뜬금없이 존댓말 했다.

“날이… 너무 덥구먼요.”

주름진 사내가 웃통을 훌훌 벗어젖혔다.

“셋이 놀기 딱 좋은 밤일세. 재미있는 놀이를 해보는 게 어떤가?”

도깨비가 두 사내를 바닥에 앉히고 놀이를 제안했다.

“지면 벌칙으로 집에서 담근 술 한 사발을 갖고 와야 하네. 알겠지?”

도깨비가 벌칙을 말했다.

“이기면 뭘 주실 건데요?”

주름진 사내가 묘한 눈초리로 물었다. 도깨비라는 것을 눈치채고 뭔가를 바라는 눈치였다.

“금! 자네들이 원하는 만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깨비는 반짝이는 금덩이를 모닥불 옆에 쏟아부었다. 생전 금을 본 적 없는 두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작합시다!”

젊은 사내는 신이 나 크게 소리쳤다.

야밤에 당산나무 아래에서 놀이판이 벌어졌다. 번갈아 가며 돌탑의 윗돌을 옆에 옮겨 쌓는 ‘돌탑 옮기기’ 놀이로, 쓰러지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놀이였다.

“자네 둘은 손이 닿지 않을 테니 돌계단을 사용하게.”

언제 생겼는지 모르게 돌탑으로 향하는 돌계단까지 놓여 있었다.

“어어, 조심히 올려. 흔들리잖아!”

먼저 구경하던 주름진 사내가 젊은 사내에게 훈수를 두었다.

“안돼—!”

돌이 쓰러지며 와르르 무너지자, 젊은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뭐 하나? 얼른 술 한 사발 가지고 와야지.”

“금방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깨비가 재촉하자 젊은 사내가 허둥지둥 집으로 뛰어갔다. 서둘러 달려오느라 반쯤 쏟은 술을 받아 든 도깨비는 단숨에 들이켰다.

“카— 술이 기가 막힌다! 놀이에서 이긴 술이 최고로 맛있는 법이지.”

“이리 오게, 자네 차례잖아?”

“금은 꼭 주셔야 합니다. 물리기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주름진 사내와의 놀이가 시작됐다.

“어이, 뭘 멍하니 보고만 있나? 얼른 집에 갔다 오지 않고.”

두 사내는 번갈아서 술 사발을 들고 밤새도록 집에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침 일찍 당산나무에 나타난 촌장은 쿨쿨 자는 두 사내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

“밤새 마을을 지킨다더니, 퍼질러 자고들 있었구먼?”

촌장은 참으려 노력하는 듯했으나 술에 취한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라 입술이 일그러졌다.

“헤헤. 촌장님, 오셨어요. 친구가 놀러 와서 재미있게 놀았네요.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헤헤. 마음이 짝짝 맞더라고요.”

“촌장님, 글쎄 내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밤새 집에 왔다 갔다가 했구먼요. 딸꾹!”

“나도 밤새 왔다가 갔다가 헤헤, 왔다가 갔다가 했네요.”

“딸꾹! 오늘 밤에 또 온다고 했으니, 그때 다시 하기로 했구먼요.”

두 사내는 눈이 퀭했으며 초췌한 몰골이었다. 자신들이 촌장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했다.

“이놈들이 어릴 때부터 요 모양 요 꼴이더니 잘한다!! 잘해!”

촌장은 끝내 참지 못하고 다 큰 사내 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화살통에서 화살을 두 개 꺼내더니 엉덩이를 세게 후려쳤다.

“아이고! 촌장님, 미쳤어요?”

“아얏! 촌장님, 밤새 고생한 우리한테 왜 이러세요!”

술 취한 사내 둘이 집으로 냅다 도망을 쳤다.

“이놈들아… 아주 잘들… 논다… 놀아….”

촌장이 매를 휘두르며 뒤쫓다 지쳐 헉헉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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