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장군 무녀
며칠 후, 마을 촌장은 마당에서 서성이며 깊은 한탄을 쏟아냈다.
“호랑이가 제아무리 무서운 게 없다지만, 이젠 방안까지 들이닥쳐 사람을 죽이더니… 허 참. 이제는 도깨비까지 나타나 멀쩡한 사내 둘을 홀려버렸구나.”
“허허… 우리 마을에 얼마나 큰 변고가 닥치려고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지. 절대, 그냥 둘 순 없어…”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큰 결심을 한 듯 발걸음을 재촉해 옆 마을로 향했다.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안에 계시는가? 무녀님께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왔소.”
촌장은 옆 마을 무녀의 집 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버지, 이제야 오셨소?”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촌장의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옆 마을 사내에게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신병을 앓게 되었는데, 결국 무녀의 길을 걷게 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장군님이 아침부터 들떠 계셨소. 미리 준비를 해두라고 일러두셨으니, 방에 들어올 필요 없이 바로 길을 나서면 됩니다.”
딸은 시집간 후 처음 마주한 아버지가 내심 반가웠다. 촌장은 딸이 안쓰러워 그동안 만남을 피해 왔었지만, 지금은 이 일만큼은 딸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둥둥! 둥둥! 둥둥!
굿판이 벌어진 마당엔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얼마 전 호랑이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이의 집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호랑이가 무서운 게 없이 그저 잔인하구나!”
둥! 둥!
“억울하게 새끼를 잃은 어미 호랑이는 밤마다 눈물을 흘리는데!”
둥둥둥 둥둥!
“잔인한 놈은 죽여야 하고, 억울함은 풀어야 하니!”
둥둥! 둥둥둥!
마을 촌장이 불러온 장군 무녀는 북 앞에서 힘차게 신의 말씀을 전했다. 그 기세가 워낙 위압적이어서, 구경꾼들은 감히 고개를 들어 보지를 못했다.
“호랑이를 죽여야 합니다!”
갑작스레 울분이 깃든 고함이 구경꾼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맞소!”
동의하는 목소리가 두어 번 따라 들렸으나, 북소리에 이내 잠잠해졌다.
“아이야, 겁이 많아 항상 남들 뒤에 숨던 네가 이제는 남들 앞에 나섰구나. 장하다. 장해.”
장군 무녀는 두 손 모아 빌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다정스레 말했다.
“장군님, 잔인한 호랑이는 어떻게 죽이며… 억울한 어미 호랑이의 원한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구부정한 허리의 백발 할머니가 장군 무녀에게 물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 대표가 되어 굿판에 나온 것이었다.
“도깨비까지 마을에 오는데,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구경꾼 사이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둥둥! 둥둥! 둥둥! 둥둥!
“그랬구나! 그랬구나! 장군님이 도깨비를 보내셨구나!”
장군 무녀는 구경꾼의 목소리에 상관없이 좌중을 집중시켰다.
“도깨비가 마을에 놀러 왔구나… 도깨비가 마을에 놀러 왔어!”
장군 무녀가 덩실덩실 춤추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호랑이와 도깨비가 마을을 해치지 않게 해 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백발의 할머니는 춤추는 무녀에게 두 손 모아 정성껏 빌었다.
그때였다.
“이놈들!”
갑자기 장군 무녀가 구경꾼 앞으로 가더니 두 사내를 향해 꾸짖듯 외쳤다.
“도깨비한테 홀려 술을 갖다 바쳤구나!”
둥둥! 둥둥! 둥둥!
“장군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 도깨비에게 술을 바쳤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도깨비와 어울려 놀았던 주름진 사내가 애원했다. 별생각 없이 굿판을 보던 두 사내가 장군 무녀 앞에서 비루한 핑계를 대며 연신 빌고 또 빌었다.
이때 촌장이 앞으로 나섰다.
“장군님, 호랑이와 도깨비를 어찌해야 할지요?”
촌장은 딸 앞에 무릎을 꿇고서 장군 무녀에게 정중히 물었다.
“호랑이가 걱정이지! 도깨비가 걱정이겠느냐. 장군님이 말하시길, ‘신령이 도깨비를 보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둥둥! 둥!
“도깨비가 공짜 술을 마셨으니. ‘그 대가로 마을의 근심거리를 없애달라’, 돌탑 앞에서 빌라고 하시는구나!”
둥둥! 둥둥! 둥둥둥!
북소리가 고조됨과 동시에 장군 무녀가 허공으로 폴짝폴짝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구경 온 사람들 사이로 폴짝폴짝 헤집고 다니다가 기도하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양손에 든 칼로 기도하는 이의 머리를 툭툭 치자, 맞은 이가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다.
구경 온 사람 모두는 마당에서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장군 무녀와 함께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이들로 마당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14_도깨비와 신령의 밀약
그날 밤, 도깨비와 장군 복장의 노인은 당산나무 아래 돌탑 위에서 굿판을 내려다보았다. 희한하게도 그들의 발목 아래로 구름이 흘렀다. 도깨비는 돌탑 위에서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꽤 편해 보였다. 그다음 높이의 돌탑 위에는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기다란 창을 들었다.
“내가 너를 이 마을로 불러들였다. 재밌게 놀았느냐?”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흥! 엉뚱하게 여기로 왔다 했더니… 신령 때문이었군.”
퉁명스럽게 말한 도깨비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재미를 본 마을이어서 참는다만, 여기로 왜 부른 게냐? 도깨비와 신령이 얼마나 친하다고…”
모자를 벗고 머리를 마구 긁적이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뻣뻣했던 머리카락이 밤하늘에 휘날렸다. 그 순간, 스무 마리 정도의 반딧불이 머리카락에서 빠져나와 돌탑 주위를 밝혔다.
도깨비는 손가락에 앉은 한 마리 반딧불에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반딧불은 굿을 하는 집으로 곧장 날아가 장군 무녀의 모자에 살포시 앉았다.
이 모습에 신령이 미소 지었다.
“네가 마을 사람들을 아무래도 도와야겠다. 나는 저 얽히고설킨 원한에 직접 끼어들 수가 없으니, 보고만 있는 게 몹시 힘들었다.”
신령은 도깨비가 마을을 지켜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마을과 인연이 있는 도깨비를 점지하여 부른 거다. 부탁한다.”
할매 무녀의 부탁으로 마을과 깊은 인연이 있을 도깨비를 찾던 중이었다.
“흥흥, 신령이 부탁하다니. 신세는 갚는 거다. 꼭 기억해라!”
도깨비는 팔짱을 끼고는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도깨비가 젊었을 적, 아주 오래전으로 이 마을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곳에 마을을 만든 사냥꾼과 친구가 되었던 도깨비가 그였다. 당시 젊은 도깨비는 호랑이 잡는 데 빠져 혼자 돌아다니다가 크게 상처를 입었었다. 그때 만난 사냥꾼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도깨비는 이곳에 도깨비 터를 닦아 마을이 들어서게 도와주었었다.
15_어미의 한
그러던 그때, 굿판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여인이 있었다.
세 아이를 호랑이에게 잃은 어미였다. 그녀는 죽은 아이들의 옷을 꽉 거머쥔 채, 헝클어진 머리와 풀어헤쳐진 저고리 사이로 핏줄이 벌겋게 선 모습이었다.
“제 소중한 아이들은 어찌하오며, 제 억울함은 어찌 풀 수 있겠습니까? 장군님! 장군님!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어미는 장군 무녀 얼굴에 대고 악을 썼다.
“이봐. 신령. 아이를 셋이나 잃었다는데… 호랑이는 내가 어떻게 하겠지만, 저 어미의 한은 내 어찌 못한다.”
도깨비는 반딧불의 눈을 통해 어미의 몸부림을 마치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모두 거두었다.”
신령은 돌탑 아래를 가리켰다. 그러자 신령의 발목 근처를 흐르던 구름이 걷혔다. 도깨비는 까마득히 돌탑 아래에서 공기놀이하는 어린 동자 셋을 보았다.
“불쌍한 어미에게는 오늘 밤 동자들과 함께 찾아갈 거다. 그렇게라도 볼 수 있다면 원한이 조금은 풀릴 거다.”
신령이 공기놀이하며 놀고 있는 세 동자에게 손짓했다.
펑—!
연기 사이를 헤치고 거대한 거북이 세 동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는 마치 밭에 우뚝 선 거대한 고인돌 상판처럼 널따랬다.
“거북 선자님, 오셨습니까?”
세 동자는 거북 선자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거북 선자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세 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눈을 아주 느릿하게 한 번 깜박였다.
“고맙습니다! 거북 선자님!”
세 동자가 동시에 감사의 인사를 외쳤다. 잔뜩 신이 난 얼굴로 거북 선자의 등에 재빨리 뛰어 올라탔다.
거북 선자가 돌탑 위를 쓱 올려보더니, 엉금엉금 돌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거북 선자 등에 선 세 동자는 거북의 등딱지에 발바닥이 단단하게 붙은 듯 흔들림이 없었다.
“거북 선자님이— 까마득한 돌탑을 오르신다!”
“하늘까지— 까마득한 구름까지 오르신다!”
“엉금엉금, 오르신다! 엉금엉금, 오르신다!”
흥분한 세 동자는 깔깔거리며 노래했다.
세 아이를 잃은 어미 앞에 장군 무녀가 섰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더니, 두 팔을 양옆으로 길게 펼쳤다. 그 손끝이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했다.
“억울하지? 너의 그 억울함을 장군님이 모두 헤아려 주셨다. 지금부터 장군님께서 너에게 말하노니. 마음의 짐을 풀어보거라.”
그녀는 어미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위로와 연민이 함께 스며 있었다.
“눈물로 말라가는 아가야… 네가 무슨 잘못이겠느냐. 내려놓거라. 그 짐을 이제 내려놓거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이 셋은 모두 동자가 되어 신령님과 함께 있느니라. 스치듯 지나치는 사람의 짧은 명에 비해 한참을 살아가느니. 네가 비록 만지지는 못하나 꿈에서는 만나리니. 어미와 자식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터이니 시커멓게 썩어가는 멍울을 내려놓거라. 불쌍한 아가야, 이제 한을 내려놓거라…”
장군 무녀는 사내의 굵고 낮은 목소리로 어미를 달랬다.
“장군님이 말하시길, 신령님이 너의 귀한 아이 셋 모두를 동자로 받아들였다는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고개를 떨군 장군 무녀는 이내 나직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장군님이 내려놓으라고 하셨으니 이제 내려놓아도 좋으련만. 쯧쯧. 불쌍하고 가여운 것. 내려놓아야 네 세 아이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많은 굿을 하면서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나긋나긋한 모습의 장군 무녀였다. 그녀는 아이 셋을 잃은 어미의 두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품에 감싸 안았다.
“에구, 아가, 아가. 참 많이 힘들었지. 나도 알고, 하늘과 땅이 다 안다. 울어도 된다. 울고 싶으면… 이제는 참지 말고, 마음껏 울어라.”
그 말에 어미는 마침내, 벅차오른 감정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엉… 엉엉… 엉엉…!”
세 아이를 잃은 어미는 장군 무녀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그동안의 말 못 할 한과 서러움을 토해내듯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