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장승 7화: 수호의 표식

by Tigerwood

16_대가

다음 날 아침, 마을 주민 모두가 한 명의 아이도 빠짐없이 돌탑 앞에 모였다.

“두 사람이 이렇게 높이 쌓은 게야?”

촌장이 도깨비에게 홀려 밤새 술을 바쳤던 두 사내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밤새도록 돌탑 옮기기 놀이로 허물어뜨리기만 했지, 쌓지는 못했습니다!”

혼이 날까 두려웠던 두 사내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돌탑은 당산나무 꼭대기까지 두 줄로 거대하게 솟아 있었다. 마을 사람 누구도 하룻밤 사이에 누가 저리 높게 탑을 쌓았는지 보지 못했지만, 도깨비가 쌓았다는 것은 모두 알았다.

“도깨비님! 도깨비님! 어서 오시어 고소한 떡을 드시고.”

“어서 오소서. 어서 오소서. 잘 삶은 고기를 드소서.”

“도깨비님! 도깨비님! 어서 오시어 잘 익은 술을 드시고.”

“어서 오소서. 어서 오소서. 따뜻한 술과 음식을 드소서.”

촌장은 떡과 돼지고기, 술을 가득 따른 사발을 돌탑 앞에 정성껏 올리고 도깨비를 향해 청했다.

“잘 삶은 돼지고기와 잘 익은 술을 마음껏 드소서. 밤새워 마신 술까지 포함하여 도깨비님에게 대가를 바라오니. 부디 호의를 베풀어 마을을 호랑이로부터 지켜주십시오.”

촌장은 장군 무녀가 알려준 대로 도깨비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도깨비님, 호랑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십시오!”

이어 마을 사람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깨비에게 소리 높여 빌었다.

그때였다.

“알겠다. 내 알겠으니, 술과 고기는 매일 바쳐야 한다.”

돌탑 위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탑 꼭대기에서 엄지발가락 하나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사람들을 내려보던 도깨비가 핑그르르 한 바퀴 돌면서 말했다. 도깨비는 언제 그리 취했는지 목소리에서 진한 취기가 느껴졌다. 왼손에는 상에 있던 고기가, 오른손에는 술 사발이 들려 있었다.

돌탑 꼭대기에서 울려 퍼진 도깨비의 걸걸한 목소리에 몇몇은 황망하게 도망쳤고, 몇몇은 바닥에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보리는 눈앞의 커다란 도깨비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온통 난리 난 상황에서 다리가 땅에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보리는 도망치지 못하고 다가온 도깨비한테 그대로 홀리는 듯했다.

“신령이 말한 아이가 너로구나. 이름을 말해보거라.”

저는 보리입니다!”

“보리라… 으흠… 오호, 오호, 오호! 아무래도 넌 도깨비와 연이 깊은 아이로구나. 네가 불렀으니, 너의 첫 도깨비 친구는 나로구나. 으하하!”

엄마는 아들이 도깨비 옆에 있는 게 영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하다가 집으로 급히 달려갔다.

“도깨비님, 막 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차려 왔습니다. 드실 동안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도 될까요?”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장난을 좋아하는 거지, 괴롭히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고. 왜 이리도 도깨비를 오해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난 순둥순둥한 도깨비인데… 무엇보다 네 아들과 친구가 되었다는 걸 모두에게 널리 알리거라.”

밥상을 들고 온 엄마에게 도깨비가 대답했다.


도깨비는 낮이면 돌탑 꼭대기에서 돌탑을 사방으로 흔들며 호랑이를 찾았다. 밤이면 당산나무 밑에서 사냥이나 밭일하지 않는 노인들과 작은 돌탑을 옮기며 술 내기를 했다. 촌장은 도깨비가 심심하지 않게 술 항아리에 술을 가득 채워두었다.

그날 이후 마을 사내들은 도깨비에게 마을을 맡기고 다시 생업인 사냥을 시작했다.


17_마을의 돌장승

호랑이와 얽힌 일들이 풀리고 난 어느 날.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마지막 날의 겨울밤이었다.

도깨비는 이제 마을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보게, 내 이제 마을을 떠날 시간이 되었네.”

함께 술 마시고 놀면서 마음 맞는 친구가 된 노인에게 말했다.

“아니, 도깨비님, 마을에서 좀 더 지내면서 놀면 안 되겠습니까?”

노인은 몹시 서운했다. 마을은 도깨비 덕분에 호랑이로부터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평안했다. 도깨비가 노인의 쪼글쪼글한 손을 붙잡았다. 모자에서 돌멩이 한 개를 꺼내 노인의 손바닥에 올렸다.

“이 돌을 돌탑 위에 올리게.”

도깨비가 노인에게 손바닥 위로 올라오라 손짓했다. 번쩍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노인은 무서워하면서도 돌탑 꼭대기에 돌멩이를 잘도 올렸다.

펑—!

새하얀 연기가 나타났다 금방 사라졌다.

당산나무만큼 높았던 돌탑은 사라지고, 도깨비를 닮은 돌장승 하나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돌장승은 마치 콧노래를 부르듯 익살스럽고 당당한 표정으로 산을 바라보았다.

“내 비록 지금은 마을을 떠나지만, 마을 입구에 돌장승 하나를 남겨두었네. 앞으로 돌장승은 도깨비가 수호신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표식이 될 걸세. 자네가 간절히 바란다면 우린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네.”

도깨비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술 한 사발 올리고 빌면 금방 돌아올지도 모르지. 하하하!”

큰 웃음소리만 남기고, 도깨비는 마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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