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소문
하땅은 ‘하늘 아래 땅’이라는 뜻을 지닌 마을이었다. 험준한 산세로 인해 사람들은 주로 산에서 채집과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하나같이 바람처럼 억세고 용감한 기질을 지녔다. 그곳은 사방이 호랑이 서식지여서 외지인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오지 중의 오지로 하늘 아래 가장 으뜸가는 땅이라는 긍지가 있는 곳이었다.
“호랑이 머리가 두 배는 됨직하다는 소문의 그 호랑이를 보셨소? 눈썹이 하얗게 세어 산신령이라도 모시는지 어마어마한 위엄을 갖춘 호랑이 중의 호랑이라면서요? 곰을 잡고는 귀한 쓸개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데, 그게 정말이오?”
하땅에 어렵사리 발을 들인 장사꾼 일행 중 중년의 한 사내가 짐을 풀기도 전에 집주인에게 떠도는 풍문을 캐물었다.
“몇 해 전 사냥 갔다가 멀리서 보긴 봤다오. 가까이에서 들으면, 포효소리에 오금이 저릿저릿한 게 정말 무섭긴 무섭더구먼. 하지만, 다행히도 그 흰 눈썹은 사람을 해치지 않으니 필시 산신령의 명을 받은 산주가 맞을 거요”
장사꾼이 왔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짐승 가죽과 잘 말린 곰쓸개나 산삼을 가지고 숙소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호랑이 가죽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는 몇 해 전 마을의 사냥꾼 회의에서 호랑이를 보면 싸우거나 죽이지 말고, 물러나는 걸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호랑이 가죽 대신 곰쓸개와 산삼이 주를 이루는 광경은 하땅의 꽤 된 평화이자 굳건한 약속을 대변했다.
02_호랑이 이름
하땅의 산에는 세 마리 호랑이의 넓은 영역이 퍼져 있었다. 두 마리 호랑이는 북쪽의 늙은 호랑이를 대장으로 받아들였는지, 서로 간에 다툼 없이 경계를 지키는 듯했다. 마을을 중심으로 북쪽은 늙은 수컷 호랑이가, 남쪽은 젊은 수컷 호랑이가 각자의 경계로 삼게 된 지도 몇 해가 지났다.
늙은 수컷 호랑이는 북쪽의 넓은 영역을 차지한 싸움꾼이었다. 비록 나이를 먹었지만, 큰 머리와 육중한 덩치, 그리고 두툼한 하얀 눈썹 밑에서 이글거리는 안광만으로도 다른 수컷 호랑이들은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일찌감치 피했다.
늙은 수컷 호랑이는 마을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마을의 사냥꾼들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하땅의 주변 산을 호령하는 산주로 받들어 ‘흰 눈썹’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당산나무 뒤의 돌탑 중에는 흰 눈썹을 모시는 돌탑이 있어, 그를 영험한 호랑이라 여기며 기도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그들은 귀한 흰 돌가루를 장사꾼으로부터 구해 돌탑에 발랐는데, 흰 눈썹의 위엄과 장수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흰 눈썹은 하땅 사람들과 다툼 없이 산주로서 일대를 독차지하며 살았다. 다만, 나이를 먹은 몇 해 전부터 북쪽 깊은 산에 자리를 틀고 앉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 그 넓던 영역이 비기 시작했다.
흰 눈썹이 비운 자리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새로 자리 잡았는데, 그중 젊은 수컷 호랑이는 젊은 나이에 비해 몹시 영악하고 탐욕스러웠다. 남쪽에 먼저 자리를 잡은 암컷 호랑이의 영역을 힘으로 쉽게 빼앗은 후, 북쪽의 늙은 수컷 호랑이 흰 눈썹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마을의 서쪽과 동쪽 산을 극도로 피해 다녔다. 무엇보다 암컷 호랑이를 동쪽으로 몰아내어, 북쪽의 늙은 수컷 호랑이를 만나지 않기 위한 중간 지대를 영리하게 만들어 두었다.
“저 어린놈의 수컷 호랑이는 사냥한 짐승을 가지고 놀다 찢어 죽이는구먼. 사람을 보고도 도망칠 생각도 안 하고… 큰일 낼 놈일세. 가까이에서 노려보던 모습이 얼마나 소름 끼치던지…”
“저만할 때 젊은 수컷들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힘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치는 걸 갖고 뭘 그러나?”
“곰 어미를 죽이고도 새끼까지 남김없이 잔인하게 찢어 죽인 것을 보지 않았나? 먹을 것도 아니면서 재미로 죽이다니. 참으로 소름 끼치고 징그러운 영물일세그려.”
사냥 나간 마을 사람 사이에서는 남쪽에 자리 잡은 젊은 수컷 호랑이가 잔인하고 영악하다 하여 ‘영물(獰物)’이라는 어둡고 불길한 이름을 붙였다.
어미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암컷 호랑이는 하땅의 남쪽 산에 자리 잡은 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젊은 수컷 호랑이에게 쫓겨났다. 동쪽 산에 둥지를 틀고 북쪽의 수컷 호랑이와 남쪽 수컷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살았다.
“어허, 그 무서운 호랑이 중에도 허약한 놈이 있더라니까. 토끼나 잡는 걸 보니 겁이 많은 것인지 주눅이 든 것인지, 눈치를 너무 살피는 게 호랑이가 맞긴 맞나 싶더라고. 젖이 불린 걸 보니 어린 새끼가 있는 암컷인 게지.”
사냥에서 돌아온 남편이 동쪽으로 쫓겨난 암컷 호랑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내가 측은한 마음에 ‘갓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남쪽 산에서 쫓겨나 동쪽 산에 정착한 다음 해에 암컷 갓난이는 처음으로 세 마리 새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