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_엄마
“자장자장~ 엄마 품에 잘도 자는 나의 아가~”
돼지우리가 있는 곳에서 아기를 재우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버지는 돼지에게 먹일 먹거리를 준비하다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돼지우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버둥거리는 새끼 돼지를 안은 딸이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에휴, 불쌍한 딸아… 이 고통을 어찌할꼬.”
평소 감정이 메말랐다고 소리 듣던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여보,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눈물을 다 보이고 그러오?”
마루에 나온 아내가 졸린 눈으로 물었다.
“우리 딸이 돼지 새끼를 죽은 아이로 생각하고 있구먼. 정신을 완전히 놓았어.”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신도 신지 못한 채 돼지우리로 뛰어갔다.
“이것아! 제발 정신 좀 차리거라! 네가 이래서야 쓰겠니!”
엄마는 딸의 품에 안겨 있던 돼지 새끼를 억지로 떼어낸 후, 딸을 돼지우리에서 끌고 나왔다.
“엄마, 왔어요. 내 아가가 저기 있는데… 두고 가면 안 되는데… 흑흑흑…”
딸이 아내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얼마 전 호랑이에게 아이 셋 모두를 잃은 미친 딸이 부모님 집으로 쫓겨났었다.
“한돌아—! 두돌아—! 세돌아—! 우리 아가가, 어디 숨어 있니?”
딸은 미친 사람처럼 낮이고 밤이고 아이들을 찾아 헤맸다. 정신을 놓았기에 언제 바깥에서 호랑이한테 죽을지, 얼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손가락질당하지 말고, 차라리 아이들을 따라갔으면….’
부모는 딸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이 지독한 상황이 빨리 끝나버리기를 바랐다.
마을을 둘러싼 산에서 활동하던 세 호랑이가 비슷한 시기에 죽거나 사라져 버렸다. 마을은 마침내 안전해졌으나, 끔찍한 침묵만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 호랑이 발자국이 산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낯선 호랑이가 자리를 잡은 듯했으나, 마을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문단속을 철저히 했고, 혼자서는 나다니지 않았다.
“어디 숨었을까? 한돌이가…”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산속까지 들어온 엄마는 숨바꼭질한다고 꼭꼭 숨은 세 아이를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쪼그리고 앉아 수풀 속을 나무막대로 이리저리 쑤시고 있던 그때, 언제 온 건지 호랑이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낌새여서 침을 벌써 흘렸다. 그녀의 목덜미를 물려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으려는 그 순간—
“크르르릉—!”
어디선가 묵직한 포효와 함께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 겁을 주었다. 깜짝 놀란 호랑이가 반사적으로 폴짝 뛰어 물러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다.
엄마는 잡아 먹힐지도 모른 채 아이를 찾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 우리 여기 있어요.”
문득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나누어 땋아 올린 동자 셋이 나란히 서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내 아가가… 여기 있었구나.”
엄마가 아이 셋을 꽉 부둥켜안았다. 그러고는 당부했다.
“얘들아, 앞으로 엄마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많이 걱정했잖니.”
“엄마, 이제 집에 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사라진 듯한 큰 호랑이가 나타나 동자 셋과 엄마를 등에 태웠다. 다행히도 엄마 눈에는 호랑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큰 호랑이는 갓난이였다. 산신령 곁을 수호하면서 확연히 덩치가 커져 있었고, 몸에는 복수와 참회로 씻겨낸 듯한 하얀 털이 꽤 나 있었다.
산신령은 갓난이를 거둔 후 자신이 죽인 아이들의 엄마를 지키게 하였다.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그 마음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지만, 산신령의 가르침과 함께 죄 없는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인 결과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했다. 동자들의 엄마가 미쳐갈수록 그녀의 고통이 갓난이의 가슴을 짓눌렀고, 그 마음이 갓난이를 더욱 힘들게 했다. 복수와 참회로 씻겨낸 그녀의 마음이 동자 엄마를 향한 공감과 연민으로 커지면서, 몸의 털도 속죄의 빛처럼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갓난이는 속세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산신령의 권속으로서 근엄한 호랑이로 변모하고 있었다.
비록 동자들의 엄마는 그 후로 삼 년을 더 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갓난이는 동자들의 엄마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묵묵히 지켜주었다.
19_고시
마을에서는 매년 동짓날이 되면, 마을 어귀에 세워진 돌장승 아래 술과 고기를 두고 산신과 도깨비에게 제를 지냈다. 또한 팥죽을 쑤어 그들의 수호신인 도깨비가 찾아오기 쉽게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길을 표시했다.
“고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고시’라고 힘껏 외쳤다. 그들은 고구려의 기상을 담아 ‘고구려의 화살’이라는 뜻을 부여했고, 강인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사냥하는 사내들로 가득한 마을이었기에, 제사 후 마을 사람들은 마무리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돌탑 너머로 활을 쏘았다.
“고시—!!”
고함과 동시에 수많은 화살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외침은 호랑이들의 슬픔과 인간의 어리석음 위에서 피어난 사람들의 무사 안전의 기원과 더불어 속죄의 염원을 담고 있었다.
동짓날 전날, 마을에서 뽑힌 사내아이 한 명이 개울과 밭에서 돌을 주워 와 새로운 돌을 돌탑 위에 쌓는 것으로부터 준비는 시작됐다.
비록 도깨비가 왔다는 소문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매년 제사를 지낸 후 모두 잠든 밤이 되면 누군가는 쾌활한 도깨비의 웃음소리를 들었다곤 했다.
“하하하— 하하하—”
20_에필로그: 산신령의 권속
흰 눈썹과 영물이 죽고, 갓난이가 산신령의 권속이 된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땅 마을 사람들은 세 호랑이와 비극적인 여인의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되었으며,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경고가 되었다.
마을에 오는 사람들은 종종 산신령을 모시는 호랑이에 관해 물었다. 그 호랑이는 온몸이 하얀 백호의 모습으로 변모했으며,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대신 길을 잃은 사냥꾼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거나, 약초를 아픈 이들의 문밖에 두고 간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를 ‘산신령의 권속’이라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호랑이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짓날의 제사를 통해 비극을 끝낸 권속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땅의 산은 여전히 험준했지만, 그 산을 지키는 존재의 묵직한 속죄와 자비 덕분에 마을은 평온을 유지했다.
그렇게, 두 호랑이의 피가 뿌려진 하땅은 세월을 견디며 산신령의 권속이 지키는 땅으로 오랫동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