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 May 11. 2024

3. 백수일 때가 좋았다

퇴근 후 누리는 삶 시리즈


아, 아련하다. 생각만 해도 그립다.

난 사람이 그립다기보다는 내가 백수였을 때가 그 어느 것보다 그립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마주하고 있었는지를.


당시 나는 5개월가량의 백수 생활을 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매우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했기에 이상하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도 충분한 그때에 나는 이유를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혀가고 있었다. 직종을 다른 분야로 전향하려고 했기 때문에 완전 무의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하루의 대부분을 인강을 듣고 자격증을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다. 어디론가 딱히 여행을 가지도 않았다. 아참, 동생의 생떼에 잠시 일본을 다녀왔던 것. 그거 빼고는 없다.


6개월이 되기 전에 나는 '취업을 해야지'하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오히려 초조하게 보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 자체는 이렇게 퇴사를 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던가. 백수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여 남편의 직장으로 지역을 이사해야 했기에 다행히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깟 돈이 뭐길래.


어쨌든 나는 백수일 때가 가끔 그립고 생각이 난다. 자유로웠던 그때, 왜 나는 조금 더 과감히 쉬지 못했나 아쉽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가장 쓸데없는 행동이라 하지만, 난 요즘 살짝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하곤 한다. 이런 바보 같은.


24년 1월부터 출근하게 된 곳은, 내가 바라던 '다른 업종'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기존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이럴 거면 백수 때 왜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지). 오히려 업무 강도가 더 세져서 브런치 글이고 나발이고, 그냥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가 일상에 웃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말에 쉬지만 월요병이라 하나, 일요일 저녁부터 나가기 싫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퇴근 후 누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해도 지금은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자는 것일 뿐. 스트레스를 해소할 겨를도 없이 그냥 잠에 빠져든다. 30대의 직장생활은 이런 것인가 생각하며, 모두가 다 고생이겠지. 돈 많이 주고 일 적게 시키는 곳은 결코 없다는 친구들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이렇게 침대에 누운 주말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나아진 것은, 오랜만에 브런치를 작성할 생각을 하고 이렇게 타자를 투닥투닥 눌러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는 게 무엇인지, 다이어리에 오늘 있었던 일, 감사한 일, 기억에 남는 일을 적기로 했는데 적지도 못한 지 언... 몇 달은 되어간다. 그래서 새해의 결심은 믿는 것이 아니라 했던가. 어쨌든 비가 오려고 꾸리꾸리한 하늘에 맞게 오늘은 잠시나마 백수였던 나의 5개월을 다시 그려본다. 조금 더 격하게 놀걸. 그게 아쉽다.


아, 아련하네.




작가의 이전글 2. 흔하디 흔한 '결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