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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한 도시의 첫인상

짬뽕같은 대도시의 맛

by 민s Brunch

5일차: 유럽의 교차로이자 우리 남은 여행의 허브에 도착하다


슈투트가르트를 떠난 ICE는 우리를 독일 금융의 심장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내려놓았다.
출구로 나서자마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의 숲이 우리를 압도했다. 뮌헨의 고풍스러움, 슈투트가르트의 단정함과는 전혀 다른, 차갑고 세련된 대도시의 풍경. 독일이 가진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중앙역 근처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엄마, 또 어떤 할아버지 보러 간다면서. 이번엔 또 누구야?"
"괴테 할아버지."
"아니 그건 또 어떤 분인데요오?"라며 딸이 실눈을 떴다.
음. 아직 중1이니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나이는 아니지.

"우리 가끔 롯데월드, 롯데시네마 가잖아. 그 '롯데'가 바로 괴테 할아버지가 쓴 책 여주인공 이름 '샤를로테'에서 온 거야."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딸이 말했다. "근데, 그래서, 그걸 왜 내가 알아야 하는 건데."
"어... 언젠가는 꼭 읽게 될 아주 중요한 책이라서? 아무튼 우리 목적지 가는 길에 있으니 잠깐 들르자~"라고 얼버무리며 괴테 생가로 향했다.


투덜대던 딸아이도 막상 괴테 하우스에 들어서자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어? 여기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옛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는지, 이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진지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괴테 하우스를 나와 조금 더 걸어 도착한 곳은 뢰머 광장(Römerberg).
"와... 여기 꼭 레고 마을 같아! 너무 예쁘다!"
파스텔톤의 목조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에 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완전히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딸아이는 동화책 삽화 같은 건물들 사이를 거닐며 연신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누르더니, 그 기세를 몰아 역사박물관에서도 찰칵찰칵 열심히 무언가를 카메라에 담았다.


역사박물관에서 나오니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서둘러 저녁을 먹을 식당으로 향했다.


"엄마, 배고파. 오늘 저녁은 뭐야? 뭔가 또 특별한 거 먹을 거지?"
"오늘의 메뉴는 바로, '그뤼네 조세(Grüne Soße)'야."
"그뤼네 조세...? 어... 이름이 불길해. 뭔가 그린그린한 샐러드 느낌인데."
"오, 예리한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내가 말하자 딸은 또다시 실눈을 떴다. 우리 육식파 소녀는 채소라면 질색이니까.

이름만 듣고 인상을 찌푸리는 딸 앞에, 연둣빛 소스가 듬뿍 얹어진 삶은 감자와 계란 요리가 놓였다.
"이게 뭐야... 역시 그린그린하네."
주저하는 딸을 독려해 한입 떠먹여주자, 아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어? 엄마, 이거 완전 신기한 맛이야! 새콤하면서도 고소하고... 뭔가 건강해지는 맛인데,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행히 프랑크푸르트의 명물, 그뤼네 조세는 딸의 입맛에도 합격인 듯했다.


나는 사실 프랑크푸르트에서 흰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싶었다. 대문호 괴테도 사랑했다는 그 아스파라거스를 괴테의 도시에서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스파라거스 시즌은 4~6월. 7월인 지금은 아쉽게도 시즌이 끝난 상태다. 나는 아쉬운 대로 제철 맞은 꾀꼬리버섯(독일에서는 '피퍼링에 Pfifferlinge'라 불리는 여름 별미다) 파스타를 주문했다. 우리는 사과 와인인 '아펠바인' 한 잔(물론 나는 진짜 아펠바인, 딸은 무알코올 주스)을 곁들이며 프랑크푸르트의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물론 '건강한 맛'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라도 있는 건지, 우리 아가씨는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컵라면 하나를 끓여 먹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호텔 침대 위.
"엄마, 나 휴족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침대에 대자로 뻗은 딸의 발에 정성껏 휴족시간을 붙여주었다.
딸아이는 피곤함에 눈은 반쯤 감겨 있었지만, 입은 쉴 줄을 몰랐다.

"있지, 엄마. 이 동네는 뭔가 많이 섞여 있는 짬뽕 같은 동네네. 대도시라 높은 건물도 엄청 많은데, 레고 같은 옛날 집들도 있고. 순간 서울 생각났어. 높은 빌딩 숲 사이에 한옥마을이 있는 것처럼. 역시 도시는 여러 느낌이 섞여 있는 게 매력인가 봐. 서울 하니까 궁금하네. 서울은 지금 엄청 덥겠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사고의 흐름에 따라 계속 웅얼거리던 딸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휴족시간에 멜라토닌 성분이라도 들어있는 걸까. 붙여주기만 하면 10분 안에 기절하듯 잠드는 딸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거 알아? 엄마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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