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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본-베토벤의 고향

피아노 소나타 8번(비창)에 대한 기억

by 민s Brunch

5일차: 본에서 떠올린 엄마의 어릴 적 추억

오늘은 ICE를 타고 본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베토벤 생가인 베토벤 하우스와 뮌스터 성당을 구경했다. 비교적 여유있는 일정이라 구도심에서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가 클래식 음악 얘기가 나왔다.


"외할머니가 엄마 어렸을 때, 자기 전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셨는데, 그 때에는 바닥에 요 깔아놓고 잤었어. 그리고 머리 맡에 카세트 테이프라는 걸로 음악을 들었거든? 빌헬름 켐프 할아버지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모음집으로 기억하는데 8번 비창, 14번 월광을 들으면서 잠들었어. 카세트 테이프가 끝나면 기계가 테이프를 돌리면서 끽끽대다가 더 못 돌리면 틱! 하고 플레이 버튼이 올라오면서 멈췄거든. 가끔 자다가 그 소리를 듣고

살짝 잠에서 깨던 기억도 나.


엄마의 어린 시절 중에 사진처럼 찍혀있는 기억들이 몇 개 있는데, 음악을 들으며 창문 사이로 보이던 커다란 보름 달을 보면서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 때 들었던 곡이 벤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이었는데, 이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랬는지 엄마 어렸을 때엔 그 곡이 14번 월광인줄 알았어. '달빛 노래라던데 너무 쓸데없이(?) 열정적이네... 훌륭한 음악가는 달빛을 보고도 저런 기분이 드나봐...'라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던 기억이 나. 비창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이름을 붙였는데, 달빛이라는 이름은 베토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른 음악가에 의해 14번에 붙여졌어. 14번 1악장을 들으면 진짜 노곤노곤 해지는 느낌이 들어. 고요하고 몽환적이랄까."


"얘, 듣고 있니?"


...이미 엄마 옛날 이야기에 대한 집중력 (참을성)이 한계치에 도달한 표정이었다.


"...케이크나 먹으러 가자"


"케이크? 오 예~~~!!!"


원래는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슈투트가르트나 하이델베르크의 카페에서 먹으려 했는데. (부산에서 먹는 돼지국밥 느낌으로..) 하지만 뭐 옆동네??니까.. 하면서 카페에 들어갔다. 캐럿 케이크와 더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블랙포레스트 케이크. 키르슈바서 향이 나는 체리 리큐르가 들어간 케이크다.


생크림에 초콜릿 스폰지가 들어가서 아이가 안 좋아할 수 없는 맛.

베토벤 할아버지도 다니셨다는 오래된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가 케이크 진열대를 보면서 "와 엄마 나 이거 다 먹어보고 싶어!"라고 했다. 블랙포레스트 하나만 시키자고 하니 "아니 여기서 어떻게 하나만 시킬 수 있냐고요오~~" 거세게 항의를 해서 이번에는 아이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좋아. 1인 1 케이크 가보자고~" 하니 엄청 좋아한다 ㅎㅎ.


나는 한 잔의 커피를 끓이면서 커피 원두 60알을 맞춰 세었다는 완벽주의자 베토벤 할아버지가 떠올라 오늘은 특별히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잠 못 잘 걸 각오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커피 맛은 깊고 진했고 케이크의 리큐르와 잘 어울렸다.


저녁 식사는 원래 라인란트 지역 전통 음식인 '힘멜 운 애드' (천국과 땅)를 먹으려 했는데 딸아이가 메뉴 설명을 듣더니 뭔가 여태껏 먹은 음식과 비슷비슷한 것 같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전통 음식 됐고 오늘은 꼭 한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해보니 한식 안 먹은지 꽤 되었네 싶어 (딸은 어제도 라면을 먹긴 했지만..) 오늘 저녁에는 한식당에 가기로 했다. 맛있게 먹긴 했지만... 역시 이 돈 내고 한식을 먹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막 들려고 하던 찰나.. 딸 아이를 보니 너무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한식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 딸은 제육볶음이 맛있었는지 오늘은 밤에 트렁크를 뒤져서 먹을 걸 찾지는 않았다. 씻고 나와서 하리보 젤리 몇 개를 먹더니 만족스러운듯 이 닦고

핸드폰을 좀 만지작 거리면서 웹툰 몇 개를 휘리릭 넘기며 보다가 바로 잠에 들었다. 중 2가 되면 올해와는 많이 달라지려나.. 사춘기인데 그래도 아직은 잘 따라와주는 아이를 보면 고맙고 다행스럽다.


누가 그러던데, 아이는 엄마의 연예인이라고. 계속 엄마의 연예인 해주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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