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책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네”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릴 적,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는 걸 참 좋아했다. 서점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 버스를 타는 내내 설렜다. 서점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면 으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했다. 어릴 적 나는 그곳만의 향기와 공기까지도 사랑했다.
‘책을 사랑한 아이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걸 꿈꾸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평범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
책을 많이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나를 특별히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아직도 읽고 싶은 책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산 책을 다 읽지 않는다.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할 때도 많다.
얼마 전 썼던 ‘청소’라는 글에서, 필요 없는 물건이 쌓이는 건 어쩌면 과거의 나의 오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핑계를 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책만큼은 예외다. 책만큼은 내 예산과 책장의 공간이 허락하는 한, 충동구매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책장에는 읽고 싶은 목적이 있어 산 책도 있지만, 우연히 펼친 페이지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책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당시의 내 마음에 와닿아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들도 많다.
속이 너무 시끄러울 때,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 피난처가 필요해지면 나는 조용히 책장 앞에 선다.
읽은 책 속에서 밑줄을 발견하고, 메모를 발견하고, 그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를 발견한다. 나는 책의 글귀가, 제목이, 표지가 예뻐서 책을 샀던 사람이었음을 떠올린다.
마치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듯, 책에 남긴 나의 발자국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조용히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
그리고 적당히 힘들지 않은 책 한 권을 골라 “딱 챕터 하나만 읽는 거야. 아니면 딱 10장만.” 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며 책장을 편다. 정말 읽는 것도 힘들 땐, 엽서집을 들여다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종이가 손에 닿을 때 느껴지는 그 위로를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그러다 보면, 꽉 막히고 꽉 채워진 마음에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든다.
그 빈 공간을 통해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
그렇게, 책은 나의 피난처이자 위안이자 구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