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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띠또 Sep 24. 2021

aesop 립밤의 향

방금 립밤을 꺼내 바르며 옛 생각이 났다.

사실 불과 몇 달 전이라 “옛”이란 말을 붙이는 게 맞을까 싶지만, 페이지가 넘겨진 다시 펼쳐볼 일 없는 시간이라.

내 생일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이솝 핸드크림과 세트로 들어있던 립밤.

튜브 형식이었다.

예전에 어릴 때 후시딘 연고가 어쩔 때 끝도 없이 줄줄 흘러나온 것 기억하시는 분 있으려나.

그때처럼 이 비싼 선물이 낭비되는 게 아까워 그래, 차라리 팍팍 바르자 싶어 온 입술이 하얗게 되도록 발랐다.


아직 추울 때인 초 봄, 건조한 입술에서 느껴졌던 이 향기가 다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금, 초 가을에 느껴진다.

그때는 내게 정말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며 막막함을 이겨내고 있었고,

지금도 내게 정말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이 향을 맡으면 풀 숲에 와있는 것 같다.

보통 립밤은 달콤한 과일 향이 많는데, 아직 열매가 다 익지 않은 나무들의 향이다.

나도 언젠가 크고 실한 과실을 주렁주렁 맺을 날이 올 거다.

준비하는 지금은 그렇기에 가치 있다.

새싹이 자라나는, 봄에서 찬란한 여름을 지났듯이

이번 가을도 결실을 맺어 포근한 겨울을 맞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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