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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띠또 Aug 15. 2021

인상파와 나의 색

2019년에 썼던 글인데, 나의 색깔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으로 간 오르세에서 반 고흐의 “초상화”를 실제로 보았을 때 정말 놀랐다.

그 색감이라니.

교과서에 실린 사진엔 나타나지 않는 형광색들.

나에겐 현대를 넘어, 미래지향적이라고 느껴지는 그 색감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이질감이 느껴져 정말 매력적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앞에 있었다.

당시에 로마에서만 일주일 넘게 묵으며 다빈치의 조각상도 보고 하던 터라

“고전은 영원하다.”를 온 마음으로 공감했었다.


18년 파리에서 다시 한번 봤을 때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다들 바쁘다던 대학교 4학년, 그러니까 2014년에 나는 일 년 간 미술동아리 활동을 하며 전시회를 많이 다녔다.

그즈음 인상파 관련 전시회가 많았다.

반 고흐의 유명한 그림이 전시되어 모든 주목을 받았던 한 전시회에서 나는 뜬금없이 라울 뒤피의 “작업실”의 색감에 반해 한동안 쳐다봤다. 그 파스텔인지 형광 톤인지 경계에 있는 하늘색과 노랑, 오렌지, 핑크가 좋았다.

엽서를 사서 좋아했던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도 했다.



15년 연수 당시 다시 찾은 니스의 해변 -공사해서 벤치가 생겼더니만- 에서 뒤피의 그림 패널을 보고 좋아했던 기억도 있다. 그 색이 바다와 정말 잘 어울렸어.



(사진은 다 18년 페르피냥, 라울 뒤피 전시에서 찍은 것이다.)

내가 정말 반했던 그림은 이 “파리의 아뜰리에” 그림 / 형광 핑크와 하늘색
페르피냥의 작업실/ 오렌지와 민트


“검은배 시리즈”가 뒤피의 몸과 마음 상태를 나타내며 점점 까매질 때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 인상 깊어서 그다음 해 프랑스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발표 주제로 삼기도 했다. 짧은 실력으로 이 메시지를 전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ㅎㅎㅎ



이후 그림을 원 없이 보기도 했고, 바쁘단 핑계로 한동안 그림을 멀리했다.

18년에 프랑스를 혼자서 여행할 때 아주 더운 날 페르피냥을 걷고 있었다.  

어쩌다 하늘을 쳐다보는데 라울 뒤피 전시를 한다는 광고가 있었고, 무작정 찾아갔다.

몰랐는데 뒤피가 작업한 곳이 페르피냥이었다.

그 민트와 오렌지 색들은 페르피냥 그 자체였다.

그는 그저 보이는 대로 색칠했다.



여행지에서는 무작정 걷고 냄새를 맡고 느끼는 스타일인데

갑자기 성지순례 모드로 바뀌어서 그의 아뜰리에를 찾아가 보기도 했고, 사정으로 못 갔지만 뒤피의 고향인 도시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르아브르이다.)


+ 내가 뒤피를 좋아하는 맘을 넘어서 존경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

뒤피는 엄청난 연습벌레였다.

작업실, 바이올린, 배, 음악가 친구들 등등 같은 주제로 계속 그려나갔다.

전시회에는 보통 완성작을 올리는데 이 전시회에선 습작이 더 많았다.

같은 사물을 이리저리 조금씩 바꾸거나 완전히 같은 구도로 그렸으니 점점 발전해가는 것이 보였다.


보통 예술가들은 영감을 받아 휘리릭, 후루룩 작품을 뚝딱 만들어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작 앞에서, 대단한 사람 앞에서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 때도 있다.

어찌 됐든 나 역시도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만 하는 직업을 택했으니 뒤피의 자세에서 많은 감화를 받았다.

또 일종의 위로도 받았다.

이제는 알고 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단 한 번에 되는 것은 없다고.

그러니 꾸준히 하자고!


오렌지, 노랑, 하늘, 민트빛이 가득한 페르피냥


여기까지가 나와 인상파 작품들의 관계이다.

이렇게 길게 정리하게 된 것은 색감 배색을 살피려 갔던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본 책 때문.

내가 좋아하는 색들이 아니?! 인상파 화가들이 주로 쓰는 색들이었다.

순수하게 내 취향인 줄 알았는데  꽤 영향을 받았나 보다.

이렇게 겹치는 색깔들을 알고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내 친구는 유독 루이 14세와 그 시대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래서 프랑스에 연수까지 왔는데!

바로크 시대를 특징짓는 원색 계열의 초록색, 빨간색 옷들을 입고 다녔다.

정말 우리가 색의 영향을 받긴 하나 보다면서 얘기해주면서 어찌나 신나든지.


내가 가진 많은 옷과, 아이템들이 이 팔레트에 속해있다.

신기한 것은 처음부터 한 번에 다 좋아한 것이 아니라 색 하나씩 하나씩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살 때 갑자기 아 ~~ 한 게 어울릴 것 같아, ~~ 한 게 필요해 라고 떠올라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인상파 그림들을 참고해서 하나씩 팔레트를 채워나가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이 색감들은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잘 어울린다.

어쩌면 내게 잘 맞는 색감들이기에 인상파 작품들에 끌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나는 퍼스널 컬러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 긴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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