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감상문

by 슬미

"어제, 저는 서른두 살이 되었습니다."로 소설은 시작한다.


아직은 젊은 나이의 여자가 마치 세월이 흘러 나이를 꽤나 먹은 것처럼 말이다. 남편이 죽은 지 7년이 흘렀고 그 7년의 시간은 보통 주부의 시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7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도 모르게 흘렀다는 것 같기도 하고, 7년의 시간 덕에 잘 버틸 수 있었다는 것 같기도 하다.


유미코의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고 그날 밤에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다. 하루아침에 마음의 준비도 없이 남편을 잃은 아내의 마음은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내는 꼭 자살을 해야만 했던 남편의 이유가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계속 남편에게 말을 걸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중에도 문득문득 남편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 마치 이건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묻는 것 같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알려달라고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도대체가 왜 그런지 소설처럼 인과관계가 딱딱 떨어지는 일이 없다. 인생은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다이고 전지적 시점으로 볼 수 없으니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다.


유미코는 어려서 지금까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왔다. 터널과 연결된 다세대 주택에서 공용화장실의 독한 냄새를 맡으며, 막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부모 밑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까지. 주변 이웃들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뿐이다. 라면 리어카를 끌던 옆집 아저씨네는 어린 자녀를 죽이고 부부도 목숨을 끊었다. 할머니는 치매로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된다. 유미코는 낯선 파칭코 화장실에서 초경을 맞는다. 어릴 적 내가 맞은 초경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난생처음 느껴보던 배의 통증과 아랫도리의 찝찝하고 축축한 기분 나쁨. 힘들고 아프다고 투정 부릴 엄마도 없어서 그냥 배를 움켜쥐고 울기만 했다. 하지만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두 번, 세 번 반복되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졌다. 유미코에게도 힘든 세상이지만 그녀는 어떤 투정과 원망도 없이 받아들인다. 그녀라고 세상이 힘들지 않았을까? 유미코의 원망과 투정은 어쩌면 먼저 삶을 등진 남편에게 향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좀 살아갈 만 한데 또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하는. 유미코는 남편의 자살 동기가 궁금한 게 아니라 모든 걸 저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크지 않았을까?


커다란 물고기 떼가 바다 밑바닥에서 솟아올라 파도 사이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답니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남편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저 삶이 버거워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라고 그저 막연히 헤아릴 뿐이다. 나 또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 적이 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마음 아픈 걸 떠나서 나도 나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절망이 있다. 여기선 그걸 바다 위에 날뛰는 빛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그걸 마치 물고기 떼로 착각하기도 한다며. 바다 위에 날뛰는 빛은 넋을 놓고 바라보게끔 시선을 빼앗기도 한다. 그저 빛과 일렁이는 해수면의 우연에 일치에 의한 착시현상이지만 어쩐지 뭐가 있는 게 아닐까 바라보게 되는 거다. 그렇게 몇 년을 남편의 자살에 의문을 품던 그녀가 재혼한 남편의 말 한마디에 수긍을 하게 된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혼이 빠져나간다고."


문득 나도 떠오르는 게 있다.

아버지의 임종.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아버지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마치 뻥 뚫린 공백 같았고,

옴짝 거리는 입술은 빈 동굴 같았다.

아마 그때 아버지의 혼도 일부 나가있었던 것 같다.


참 무책임하고 단순한 대답인데 유미코는 인생의 답이라도 찾은 것인 냥 반응한다. 그동안 대답 없던 질문들에 대한 첫 답을 받았기에 그걸로 족 했는지 모르겠다.


자살을 다룬 책이라 읽고 나면 마음이 많이 가라앉게 된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 누군가에 말하지 못했지만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서 위안을 얻게 되는 책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 남편,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들에 상처받곤 한다. 그들 또한 나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을 것이다. 나 또한 항상 이성적일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가끔 알 수 없는 파도의 일렁임에 내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때가 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아닌 타인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환상의 빛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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