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그녀는 저녁 일곱 시의 급행 전철에 실려 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김기태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날’의 주인공들은 다들 이러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특별히 어떤 사건에 의해 삶이 흔들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기 롤링 선더 러브의 주인공 ‘조맹희’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소설의 배경은 직장인들이 흔히 이용하는 출퇴근 교통수단인 지하철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은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교통수단이지만 또한 돌발성이 도처에 내재해 있는 위험하고 긴장감이 고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은 마치 정글같은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조맹희는 그런 정글에서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살아가는 초식동물이다.
조맹희는 블로그를 하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피드 한다.
‘여름, 재즈, 당신, 그리고 아이스크림. 달다아아아아아!’
‘크리스마스가 싫다. 오늘부터 1225번 버스도 안 탈 거다.’
블로그의 방문자는 0이거나 1이다. 방문자가 많다면 좀 더 잘 다듬어진 글을 올렸을까?
요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브런치스토리...... 다양한 SNS를 인터넷 상에 자기만의 방처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리운 건 조악하지만 귀여운 아바타가 있고, 도토리를 모아 벽지도 사서 홈페이지를 꾸미기도 하면서 일촌이라는 파도를 타고 관심 있는 사람의 근황을 염탐하기도 했던 SNS의 조상격인 싸이월드일 것이다. 조맹희의 블로그를 보고 이불 킥 할 스토리를 많이 남긴 싸이월드의 감성이 문득 그리워졌다.
조맹희는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혼자인 시간을 즐기는 독립적인 인간도 아니다. 하지만 조맹희는 어쩐지 마땅한 짝을 만나지 못한다. 용기를 내서 나간 ‘솔로 농장’이란 프로그램에서도 짝을 찾기보단 자신을 찍는 PD의 작은 손짓이나 행동에 반해서 그에게 고백하고 만다. 이런 조맹희를 보면 주변에서는 현실감이 없다. 철이 없다고 일축해 버리곤 할 것이다.
나도 한때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에 빠져서 본 적이다. 연예인이 아닌 나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들-이라고는 하나 대부분 학벌이 좋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고 거기에 외모도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화려한-이 감정에 흔들려 울고, 매달리고, 질투하는 모습들이 신기하면서도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남의 연애는 어쩜 저리도 유치하고 속물적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 사람들을 욕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그들은 삶과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능동형 인간일 뿐이다. 인생을 수동적으로만 살아온 나로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괜히 질투 나서 못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롤링 선더 러브의 ‘조맹희’는 결국 짝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또 혼자가 된다. 그녀는 "저 삽질한 거 후회하지 않아요."라며 주어진 인생에 그럭저럭 맞춰서 살아가는 게 아닌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이다. 또한 위태로워 보이는 듯 하지만 강렬한 사랑의 힘을 믿는 순수한 영혼이기도 하다. 사랑의 상처로 한 단계씩 빌드업되는 여성이기도 한 조맹희를 보며 나를 응원하게 된다.
소설 중간중간 가요나 팝송의 가사가 글의 내용에 이어서 자연스럽게 인용되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의 감초이다. 마치 좋아. 아주 좋아. 자연스러웠어.라고 엄지 척해주고 싶어진다. 특히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조맹희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한 듯한 가사로 예전에 괜히 울적해지면 카세트 플레이어에 발라드를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마치 내가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우울한 마음을 더 우울하게 몰아갔던 시절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나?
‘롤링 선더 러브’라는 제목의 뜻이 뭘까해서 찾아봤다. 유추하건대 롤링선더라는 모바일 게임에서 유래된 듯하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게임으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써서 살아남는 게임으로 솔로 농장처럼 연애를 소재로 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랑을 쟁취하려는 연인들과 모든 아이템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결국 사랑이라는 게임판에서 결혼이라는 목표지점까지 가기 어려운 세태를 나타낸 건 아닌지 씁쓸하기만 하다.
이쯤 되니 조맹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이제야 나 태어난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그의 소설은 지금을 살아가는 '원오브뎀'을 향한 응원가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