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권력

에세이

by 슬미

이사를 가기 위해 오랫동안 안 쓰거나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을 당근마켓에 나눔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눔을 받고 싶다고 채팅을 보내온다. 몇 번의 나눔을 하다 보니 나눔을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못쓰는 소형 가전이나 가구들은 쓰레기로 버리려 해도 돈을 주고 버려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쓰레기 버리는 몇 천 원이 아까워서 나눔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사회적 우위-환경을 생각하고 이웃에게 베풀 줄 아는 선한 의지로 중고 마켓에 나눔을 올리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에 있다고 자만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물건을 공짜로 받아가니 좀 더 공손하게 대해야 하지 않나라는 무서운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 공기청정기 나눔 받고 싶은데요. 언제 가면 될까요?’

‘네, 오늘 저녁에 받으러 와 주세요.’

‘제가 휴일 근무가 늦게 끝나 비대면으로 찾아가면 안 될까요?’

‘몇 시에 오실 수 있으세요?’

‘밤 12시 끝나서 1시에 가게 될 것 같아요.’

비대면으로 나눔을 하게 되면 물건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공동 현관 앞에 내놓고 어디에 어떻게 찾아가라는 안내를 하는 게 귀찮았다. 공짜로 주는데 그렇게 까지 수고를 해야 하나 싶은 거다.

‘죄송하지만 그럼 안 될 것 같아요’

‘아, 네 아쉽지만 좋은 나눔 되세요.’

물론 바로 다른 이웃이 관심을 보이고 물건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와서 가져갔다.


아이가 커서 이제는 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내놓았다. 역시나 이것 또한 채팅으로 나눔 받고 싶다는 코끼리라는 닉네임의 사람이 문의해 왔고 우리 아들이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와 보드게임이라며 꼭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럼 받으러 오시라 했는데 그가 꼭 집 앞으로 가야 하냐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나는 속으로 당연한 거 아닌가? 공짜로 받으면서 매너가 없네. 이 사람도 외국인 아닌가? 아들이 필요하단 건 감정에 호소하는 거짓말 아냐 라며 괜히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당연히 집 앞으로 오셔야 한다고 했고 오늘 받으러 가겠다고 답을 해왔다.


정작 저녁 7시에 오라고 해놓고 나는 그 약속은 깜박 잊고 잠시 외출을 해버렸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으면 끊기고 뭐지 싶어 보니 중고거래 앱을 통한 전화였고 10분 전에 집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채팅이 와 있었다. 아차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못된 심보가 올라와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주차장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톡을 보내고 잰걸음으로 집에 들어가 나눔 물건을 챙겨 나왔다.


아파트 단지를 훑어보며 누가 받으러 왔나 눈으로 찾는데 주차장 구석에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가 피우던 담배를 치우며 눈인사를 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의외로 그는 한국 남자였다. 딱 보니 아이를 키울 법한 애아빠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그러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같은 한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였다. 그는 연신 고맙다고 하며 물건을 받아갔고, 센스 있게 몇 분 뒤에 쿨거래 회신도 잊지 않고 보내왔다. 중고거래를 통해서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달았다. 쓰레기 버리는 몇 천 원이 아까운 나와 공짜로 물건을 받으러 온 외국인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뉴스를 보면서 내로남불로 자신의 잘못은 실수라고 말하며 남의 잘못은 뼛속까지 파헤치겠다는 정치인에게 사람이 어떻게 저러냐고 말하는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숲'에 나오는 자객이 말한다.

“뭐 사람을 죽이는 것쯤이야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일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는 사람을 죽일 때 허리의 검을 쓰지만 당신들이야 칼 대신 권력으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아니면 그럴싸하게 위해주는 척하는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야 물론 피를 흘리지도 않고 사람은 멀쩡히 살아 있으니 죄가 아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이미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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