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때
맥주를 살까 말까
어젯밤, 쌈케일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그리고 괜스레 맥주코너로 눈길이 간다. 사실 요 며칠 목이 간질간질 거리고 조금씩 따끔거리는 것이 인후통이 오는 것 같은데, 그래서 술을 안먹는게 좋을 것 같은데도, 이미 카트는 맥주코너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왠걸, 지난번처럼 파격적인 세일을 안한다. 그러니 좀 망설여진다. 마치 삼성전자 주식을 5만2천원에 구입한 경험이 있다보니, 지금 7만5천원에는 매수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처럼.
그래서 관점을 바꿔본다. '이곳을 벗어나 집에 가버리면, 다시 나오기 귀찮다는 환경이 나를 통제하지 않을까.'
집 밑 편의점은 맥주를 얼마에 파는지 미련이 남아, 아내에게 편의점 문에 붙어있는 광고 내용을 살펴보라고 한다. 눈으로 보기엔 꽤 먼 거리인데도.
그렇게 집으로 들어와 헛헛한 배를 수박, 사과, 바나나, 헤이즐넛과 해바라기씨 견과류로 한 상을 차렸다.
달콤한 바나나와 아삭한 사과, 시원한 수박, 고소한 견과류가 입안을 개운하게 해줄무렵, 맥주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사라졌다.
그렇게 뿌듯한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맑은 정신으로 눈을 떳다. 아내는 '미생'5권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해준다.
"오과장 선배 중에, 회사를 관두고 피자집을 차린 사람이 있는데, 처음엔 잘 되는가 싶더니 갈수록 잘 안되서 결국 망해. 선배와 오과장이 오랜만에 만나 반주를 즐기는데, 헤어질 무렵, 그 선배가 오과장에게 '애들 용돈 주라'며 봉투를 건내는데, 용돈의 액수가 너무 큰거야. 그래서 살펴보니 편지가 같이 있는데, 다시 취직하여 자기 라인을 살리고 싶다는 내용이었어. 결국 뇌물이었던거지."
오과장은 그 봉투를 돌려주려 다시 선배를 찾는다. 선배를 찾은 그날도 선배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오과장은 선배에게 말한다.
"선배님, 잘나갈 때도 취하는 것을 경계해야되지만, 잘 안될 때도 취해있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는데, 선배님처럼 성실합니다. 다만 그 친구와 선배님이 다른점은, 그 친구는 취해있지 않습니다."
개그맨 윤성호씨가 인생이 너무 안풀릴 때, 오히려 술과 담배를 끊고 정신을 맑게하여 운동에 전념했다고 하는데, 어제 맥주를 먹지 않은 나 자신에게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들으면, '구차하게 뭔 그런 생각을 하냐, 그냥 하나 사 먹으면 되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지금, 나를 취하게 만드는 기호식품이 우리집 가계부 식비를 일부 차지하는 것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맥주를 사 마셨더라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이 들었을텐데,
상쾌한 아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