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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러 갔다가 채우고 돌아왔다

황토방의 오해

by 해피엔딩

‘휴, 이제 두 시간만 더 있으면 찜질방이다.’

요즘 황토찜질방에 푹 빠진 경민은
오늘도 퇴근 후 찜질방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불가마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을 쫙 빼고,
시원한 물 한 컵에, 뜨거운 물 샤워까지—
한 주의 피로가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니까.


“두 명이요.”

카운터에서 아내와 함께 입장료를 계산하고
찜질복을 받아 탈의실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특유의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찜질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데 경민의 시야에 낯선 물체가 하나 들어왔다.

‘저게 뭐야?’

평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휴대폰.

‘아니, 누가 저렇게 멍청하게 휴대폰을 놔두고 가냐…’

요즘 같은 세상에 휴대폰을 놓고 다니다니,
칠칠맞은 사람을 비웃듯 경민은 혀를 찼다.


경민이 다니는 찜질방은
실제로 장작을 태워 불가마를 데우는 오래된 시설.
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은 듯,
시설은 후졌지만, 그만큼 사람도 적어 한산하다.

이곳을 오래다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내집처럼 쓰는 곳이다.

그래서 경민은 사물함을 2개나 쓴다.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
그렇게 가방과 옷을 나눠 2개의 케비넷에 담았다.


그때, 아랫배에서 급하게 신호가 온다.

‘아… 갑자기 똥 마렵네.’

총총걸음으로 샤워실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 찜질방은 탈의실 안에 화장실이 없고
샤워실 안쪽에 붙어 있는 구조.

변기에 앉아 긴장을 풀고 있는데—
문 밖에서 “똑똑.”

경민도 “똑똑.” 하고 답한다.

이 화장실은 문에 잠금장치가 없다.
‘혹시 누가 그냥 문 열고 들어오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노크가 반가웠다.

‘그래도 매너는 있는 분이네.’

하지만 변기는 쉽사리 경민을 놓아주지 않았다.
노크 소리 이후로도 10분 가까이 더 앉아 있어야 했다.


샤워실로 나왔을 땐,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급했나 보지.’

경민은 따뜻한 물로 몸을 가볍게 씻으며
탈의실 쪽 창으로 안을 바라봤다.

한 아저씨가 안절부절하며
사물함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뭘 잃어버리셨나?’
‘왜 저렇게 초조해 보이지?’

경민은 관찰자처럼 바라보다,
‘남 일에 참견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씻고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평상 위에 경민의 휴대폰이 있었다.

경민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아까 어떤 멍청이가 놓고 갔다고 했는데…
그게… 나였네…’

휴… 안 도둑맞은 게 다행이다.

경민은 민망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채
휴대폰을 켜고 알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아까 초조하던 그 아저씨가 다시 들어왔다.

이번엔 관리자용 열쇠를 들고
잠긴 사물함을 하나하나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경민의 사물함도 툭— 열었다.


“어… 저기요.
그건 제 사물함인데요. 뭐 찾으세요?”


아저씨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여기 근처에서 소리는 나는데 보이질 않네요.”


경민은 기억을 되짚었다.


“아, 저도 여기 들어왔을 때
평상 위에 휴대폰 하나 있는 걸 봤는데…
지금은 없어졌네요.
누가 가져간 줄 알았죠.”


아저씨는 불안한 눈빛으로
다른 사물함도 열려 한다.

그런데 이번엔 열리지 않는다.

경민이 두 번째로 쓰던 사물함.


‘아, 잠깐만…
내 사물함이 두 개였지.
혹시… 혹시 그 휴대폰…?’


경민은 자신이
그 휴대폰을 자기 것인 줄 알고
그 두 번째 사물함에 넣었음을 직감했다.


“이 열쇠로 열어보세요.
이 사물함은 제 키입니다.”


아저씨가 사물함을 열자,
그 안에 아까 그 휴대폰이 있었다.

아저씨는 눈을 부릅뜨고 경민을 쏘아봤다.


“이게 어째서 당신 사물함에 들어 있는 거요?”


경민은 얼떨떨하게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제가 넣은 게 아니라서요.”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이 선명하게 이어졌다.


‘아… 내가 그걸 내 건 줄 알고
그대로 사물함에 넣어버렸구나…

그래서 내 휴대폰이 평상 위에 있던 거였어...’


아저씨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런데 왜 사물함을 두 개 써요?
그게 맞는 겁니까?”


경민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저 입에서 **“죄송합니다…”**가 나왔다.


“난 여기 사장은 아니지만
두 개 쓰는 게 맞는지,
한번쯤 생각은 해보셔야지 않습니까.”


탈의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경민은 평상 위에 멍하니 앉았다.
‘지금 이게… 뭐지?’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수많은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어쩌면 다 나름의 맥락이 있었을지 몰라.
내가 이해 못 했던 일들이,
단지 내 시야 밖에 있었던 것뿐이었구나.’


경민의 마음 한켠이, 조금 더 넓어졌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서자
아까 그 아저씨가 멀찍이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아직도 부담스러웠다.

경민은 사과하고 싶었지만,
사물함을 두 개 쓴 순간, 이미 신뢰를 잃었음을 깨닫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신 카운터에 가서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관리자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은


“어휴, 그런 일도 있죠.
언제 또 볼 줄 알고요~
신경 쓰지 마셔요.”
라며 TV 보러 가야 한다고 자리를 떴다.


경민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직원말고 사장님한테 말했어야 했는데…”


그날 이후, 찜질방 갈 땐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다닌다.

사물함은 늘 하나만.

그런데도,

아저씨는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참, 희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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