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맞지만 틀린 계산법

by 해피엔딩

우리는 돈 이야기를 하면 왠지 무겁고 진지해질 것 같지만, 의외로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많다. 금액은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순간 속에서 드러난 마음의 무게는 오래 남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밥집에서의 작은 기억이 있다. 친구가 국밥 한 그릇 값 3,500원이 없어 나에게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내줬다. 그러나 그 돈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소소한 금액이지만, 그때 처음으로 ‘빌려준 돈이 꼭 돌아오는 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배웠다. 돈은 잃었지만, 사람과 약속의 무게를 배우는 값진 수업이었다.


아내도 자기 이야기를 보탰다. 대학 시절, 친구와 함께 먹은 피자에서 비롯된 일이다. 가격은 3만 원. 친구는 통신사 할인 9천 원을 적용받았다. 아내는 ‘그럼 2만1천 원을 반으로 나눠 각자 1만500원을 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계산법은 달랐다. “난 9천 원 할인받았으니 6천 원만 내고, 넌 1만5천 원 내.” 따지고 보면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할인 혜택은 분명 그 친구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내는 그 순간, 계산기 위의 숫자가 아니라 관계 위의 온도를 더 선명히 느꼈다고 했다.


비슷한 경험은 여행길에서도 나타난다. 하루 점심 한 끼 정도는 각자 먹은 만큼 내는 게 공평하다. 누군가는 8천 원짜리, 누군가는 만천 원짜리를 먹었으니 각자 지불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2박 3일의 여행 동안 모든 끼니와 간식, 커피, 입장료까지 일일이 따지다 보면 마음도, 관계도 피곤해진다. 그래서 여행에서는 결국 모두의 지출을 합쳐 인원수로 나누는 것이 더 평화롭다. 공평보다 중요한 건, 함께하는 즐거움을 지켜내는 일이니까.


며칠 전 아내가 꺼내준 또 다른 일화는 햄버거 가게에서였다. 동료는 자기보다 더 비싼 메뉴를 먹어놓고는 “엠빵하자”며 웃었다. 아내는 속으로 ‘그래, 내일은 나도 비싼 걸 먹어야지’라고 다짐했단다. 그런데 이튿날, 아내가 실제로 더 비싼 메뉴를 고르자 동료는 이번엔 “오늘은 각자 계산하자”고 말했다. 순간 아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금액 차이는 몇백 원에 불과했지만, ‘규칙이 자기 입장에 따라 바뀌는 사람’이라는 인상은 오래도록 남았다.


돌아보면, 이 모든 이야기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숫자로는 작은 액수였지만, 그 순간 보여준 마음 씀씀이가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국밥 3,500원, 피자 할인 9천 원, 여행길의 정산, 햄버거 몇백 원 차이…. 모두가 돈의 산수 속에서 드러난 관계의 문법이었다.


돈은 계산기로 셀 수 있지만, 사람 사이의 신뢰와 배려는 단순한 산수로 나눌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셈해야 할 건 지갑 속 숫자가 아니라, 관계 속 온기일지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완벽한 타이밍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