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불편해질까 봐, 약해 보일까 봐, 혹은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자신이 두려워서다.
“아이를 안 낳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35살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대부분은 마음속에 품고도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묻는다. 그리고 내 곁의 사람은 말한다. “그게 용기”라고.
교감 선생님도 같은 말을 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려 한다고 털어놓았을 때, “그게 용기 있는 일”이라고. 사실 그렇다. 망설이고 숨기는 게 쉽지, 드러내고 부딪히는 건 어렵다. 하지만 나는 부딪혀 보고 싶었다. 그래야 풀린다.
아내에게는 오래된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다투고 장모님이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아 불안했고, 어느 날 밤에는 집 근처를 몰래 살피던 장모님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불러야 할까 망설였지만, 끝내 부르지 못했다. 어머니가 숨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은 강렬하게 남았다.
그래서 아내는 지금도 갈등이 일어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기억이 살아난다고 한다. “혹시 상대가 떠나는 건 아닐까?” “이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으로.
하지만 우리는 배워간다. 다툼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싸움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문제는 싸움 자체가 아니라 그 뒤의 태도라는 것을. 잠시 문을 닫고 들어가는 대신, “에너지가 부족하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비폭력대화는 결국 갈등의 기술이다. 내 욕구와 네 욕구가 충돌할 때, 어떻게 연결할지를 배우는 공부다. 누군가는 싸움 뒤에 다시 돌아오는 길을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길을 연습하고 있다.
어제 본 유튜브에서처럼, 관계는 얕은 물결을 넘어서 깊은 곳으로 끌어내는 과정이다. 잡을 것은 잡고, 풀어야 할 것은 푸는 과정. 그럴 때 두려움은 조금씩 줄어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안다. 싸움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것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건 ‘망상’이라 했다. 맞다. 하지만 그 망상을 알아차리고, 대비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두는 건 또 다른 용기다. 언젠가 다툼이 생기더라도, 예전처럼 누군가 문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제 우리는 그 믿음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