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연수 중에 한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다. 사실 나는 그 분께 따로 칭찬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분께 먼저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던 차였다. 그런데 그분이 먼저 나에게 고맙다고, 좋았다고 말을 해준 것이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저 사람이 해줘서 나도 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
‘진심 없이, 그냥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그러면서 속으로 억울해졌다.
나도 사실 칭찬할 생각은 있었단 말이다.
‘나는 처음부터 줄 마음이 있었어!’ 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 마음의 결을 꼭 집어 표현하자면,
"기브 앤 테이크"의 논리를 넘어서고 싶었던 거다.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계산기 두드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참 웃기다.
상대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칭찬을 받고, 고마움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오히려 ‘진심이었다’는 걸 굳이 설명하고 싶은 내 마음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아내는 말했다.
“그걸 일일이 다 신경 쓰면 피곤하지 않아?”
정곡을 찔리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학기 초 교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내가 그걸 놓쳤을 때 괜히 민망할까 봐,
못 들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고,
혹시라도 오해가 생길까봐 선제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내가 모든 걸 듣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굳이 말로 설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누가 문제 삼지도 않았는데, 나는 미리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있었을까?
어느새 나는
‘사람들의 시선 속 내 모습’에 집착하느라,
내가 진짜로 느끼는 감정을 묻어두고 살고 있었다.
그날의 대화 덕분에 가지치기를 했다.
불필요한 설명, 과한 배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에 대한 걱정.
이런 가지들을 잘라냈더니
조금 더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좀 더 가볍게 숨을 쉬고,
사람들 앞에서 덜 애쓰게 되었다.
칭찬은 주고받으면 되는 것이고,
대화는 들었으면 대답하고, 못 들었으면 다시 물으면 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음의 무게를 덜고 나니,
‘그냥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