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공간은 다양한 역할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은 사회다. 교사, 강사, 행정직원, 학생… 그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고, 서로의 일과 노력을 존중하며 움직여야 하는 곳. 하지만 가끔, 그 미묘한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며칠 전, 평소처럼 외부 강사님께 드릴 음료를 챙기기 위해 행정실 냉장고로 향했다. “하나 가져갈게요.” 가볍게 말했을 뿐인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치 못한 반말이었다.
“왜? 예산 없어요?”
그 짧은 말들 속에 담긴 뉘앙스는, 단지 말투의 문제가 아니었다.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어딘가 낯선 자리에서 무례하게 취급당했다는 당혹감이 확 밀려왔다. 잠시 굳은 표정이 되었지만, 나는 차분히 말했다.
“강사님 드리려고요.”
사실 그 음료 하나는 내 몫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을 위한 작은 환대였고, 나는 그걸 나의 배우자에게도 알려주었을 만큼 의미를 두고 있었다. 예전 학교에서는 교무실과 행정실 모두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이번 상황이 더욱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분이 왜 그랬을까, 곱씹어봤다. 이미 어떤 소문을 들은 걸까. 새로운 교사에 대한 경계심이었을까. 아니면 행정 자원의 사용에 대한 오해였을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에게 남은 건 ‘그 말투는 아니었는데…’라는 씁쓸함뿐이다.
그날 이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다음엔 나도 반말로 받아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누군가의 무례를 나의 무례로 되갚는 건, 결국 나의 품위를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말’이 힘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존댓말은 단순한 격식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인간으로 대우한다는 표시다. 그래서 우리는 반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존댓말 한 마디에 위로받는다.
가끔은 나도 젊은 교사들과 대화할 때 “제가”보다는 “내가”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존댓말을 섞되 말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도 분명 서로의 암묵적 합의가 있어야 자연스러울 수 있다. 말은 언제나 ‘둘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거울이니까.
존댓말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결코 약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무례함을 나의 인격으로 넘어서는 성숙한 대응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억울함을 참으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내 말과 태도도 존중을 담고 있는가를 먼저 되돌아보자는 말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존중은 누군가의 직책이나 나이에 따라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말 한 마디에 담기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음료 하나를 꺼내며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사님 드리려고요. 하나 가져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