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던 길이었다.
하교 시간, 아이들로 복작이는 복도 끝 1학년 교실을 지나던 참이었다.
그런데 계단 위에서 올라오던 한 1학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는 눈을 빤히 마주치더니,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응, 왜?”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순간 멈칫했다. 단순한 인사도 아니고, 질문도 아니고, 뭔가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천천히 되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그제서야 아이는 말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무언가 말을 걸었는데, 친구가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단다.
말을 했는데, 아무 반응 없이 지나가 버렸다고.
그게 너무 서운했다고.
자기는 분명히 말을 했는데, 그걸 못 들은 척하는 게 속상했다고.
“그래서... 좀 속상했겠네?”
“네. 속상했어요.”
“말을 하면 쳐다라도 봐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맞아. 말은 소통이니까... 서로 응답이 있어야지.”
나는 아이가 몇 반인지 물었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려보라고 조심스럽게 안내했다.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8살 아이의 고민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참, 너도 인생 고달프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어린아이의 고민이 내 고민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을 때.
내 말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느낌.
무시당했다는 기분.
상대방은 별 의도 없이 지나쳤을지라도, 내겐 하루 종일 남아 있는 찜찜함.
그런 감정을 나는 지금도 겪고 있는데,
8살짜리 아이도 그 감정을 벌써 마주하고 있다니.
하지만 저녁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그 아이는 꽤 괜찮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상하다고 느꼈고,
그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았고,
그걸 혼자 삭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누군가는 담임도 아닌, 지나가던 나 같은 선생님이었다.
그 말 한마디가 마음을 쿡 찌른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 그 말엔 단지 화가 아니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거다.
그 나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통을 포기하지 않고 표현해낸다는 건
분명 건강하다는 증거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인지 매일 되묻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배운 날이다.
말의 무게, 응답의 소중함, 감정 표현의 용기.
그 모든 것을, 8살짜리 작은 아이가 내게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