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하나로 싸운 날
연수가 있는 날이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워야 했고,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두 대 놓여 있었다. 하나는 평소 내가 쓰는 것이고, 하나는 남편의 것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여보도 노트북 필요해?”
정말로 그뿐이었다.
디지털 연수라는 말은 들었지만, 꼭 노트북이 필요한 연수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휴대폰으로도 충분한 연수도 있으니까.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나도 디지털 연수 가는데.”
순간,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말의 내용보다 말이 놓인 자리, 말이 튀어나온 각도가 마음에 걸렸다.
설명이라기보다는 반박처럼 들렸다.
‘왜 저렇게 말하지?’
‘내가 뭘 잘못 물었나?’
‘지금 나를 탓하는 건가?’
말은 짧았지만, 마음은 금방 복잡해졌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질문을 듣지 못했다. 대신 어떤 오래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왜 그걸 묻지?’
‘당연한 걸 왜 확인하지?’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이런 말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나도 애쓰고 있는데.
나도 가정에 기여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응, 필요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디지털 연수 가는데.”
말을 뱉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사실을 전달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급히 세운 방어막이었다는 걸.
나는 서운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내가 왜 불편한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말이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뉘앙스로 들렸고,
그 뉘앙스가 나를 한 발 물러서게 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말이 이어졌다.
나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왜 이렇게 날 세우지?
그날 저녁, 우리는 결국 노트북 이야기를 했다.
아니, 노트북 이야기를 가장한 마음 이야기를 했다.
“그런 걸로 뭐 서운해하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늘 스스로를 쿨한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서운함 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내 말 아래에 숨어 있던 감정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가정 경제를 맞추려고 애쓴 마음,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던 계산들,
그 모든 것을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
나는 아픈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희생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억울했다.
‘왜 이 애씀은 당연한 게 되어버렸지?’
그 질문이 내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도 가정에 기여하고 있고,
왜 치료받으러 가는 걸 눈치 봐야 하냐.”
그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건,
그제야 나도 서운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서운함을 인정하자
오히려 말은 차분해졌다.
그날 대화의 중간쯤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내가 지키려던 건 사실 ‘이상적인 나’였구나.
늘 이해심 많은 사람,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속 좁지 않은 사람.
그 이미지에 집착하느라
나는 정작 내 진짜 마음을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찌질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을
항복해야 자유로워지는 거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그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어제 네 말 들었을 때
나, 뚜껑이 열릴 것 같았어.
근데 동시에 되게 슬펐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분노처럼 보였던 감정의 바닥에
사실은 슬픔이 있었다는 걸.
화는 가장 빠르게 튀어나오는 감정이다.
슬퍼도, 당황해도, 억울해도
우리는 먼저 화를 낸다.
그날의 화도 그랬다.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서 슬펐고,
그 슬픔을 설명할 말이 없어서
화로 던져버렸다.
노트북은 그대로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두 대 모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말하려 애쓰고 있다.
아직도 서투르고,
여전히 어긋날 때가 많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는 노트북 때문에 싸운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너무 늦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 비슷한 순간이 오면
아마 이렇게 묻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네 마음은 어디쯤 와 있어?”
노트북보다 먼저,
그 질문을 꺼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