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이해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에 대하여
회식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회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미 몇 주 전 공지를 했고, 장소가 바뀌면서 다시 한 번 알렸고,
참석 인원에게는 쪽지로, 또 한 번은 말로 전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이 올 거라고,
아니, 이미 도착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당일 오후 늦게,
그날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졌다.
깜빡했다는 말,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말.
그 설명은 틀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는 설명되지 않은 찌꺼기 같은 감정이 남았다.
기분이 나빴다.
정확히 말하면, 기분이 더러웠다는 표현이 먼저 떠올랐다.
그 표현이 나올 만큼,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나는 예전보다 말을 조금 더 한다.
마음에 남은 일을, 그날 안으로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말을 하다 보니, 문득 얼마 전 읽던 책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프레임을 바꿔보라.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해봤다.
“오히려 잘 됐다.”
농담처럼, 혹은 체념처럼.
그런데 말을 뱉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리프레이밍일까?
아니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얄팍한 방어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불편했던 건 ‘불참’이 아니었다.
사람은 못 올 수도 있다. 잊을 수도 있다.
내 마음을 건드린 건,
이미 여러 번 공유된 약속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버린 그 방식이었다.
나는 시간과 약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마 그건 내 성격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들어진 나만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담사에게도, 지인에게도
나는 종종 “그런 부분을 유난히 잘 챙기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지.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결에 가까운 거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깜빡하겠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헷갈릴 날도 오겠지.
그리고 그때는,
사과해야 할 타이밍마저 놓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약속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미리 말해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말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음속으로 선을 그을 것이다.
이해는 하되, 나를 지우지는 않기로.
관계를 지키되, 기준까지 내려놓지는 않기로.
그날의 회식은 그렇게 지나갔다.
누군가는 오지 않았고,
나는 조금 더 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에요.”
그 말 한마디로,
그날의 감정은 제자리를 찾았다.
사람은 사건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어디에 내려놓느냐로 자란다는 걸
나는 또 한 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