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한 장의 철학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서 배운 작은 책임

by 해피엔딩

팬티 한 장이 가르쳐 준 것

아내가 몇 년 전 코데즈컴바인에서 여성 사각팬티를 샀다.
살색이고, 허리 밴드가 편안해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2023년에 산 것인데 지금까지도 잘 입고 있다.

그래서 비슷한 제품을 2025년에 다시 몇 장 더 샀다. 같은 브랜드였고, 네이버 쇼핑을 통해 구매했다. 이번에는 다른 판매처였지만 같은 코데즈컴바인 속옷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허리 밴드가 꾸불꾸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고무가 안쪽에서 수축하면서 원단을 끌어당긴 것처럼 물결이 생겼다.

이상했다.
2023년에 산 것은 멀쩡한데 2025년에 산 것만 먼저 망가진다.

사진을 찍어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구조를 알게 되었다.

같은 브랜드라 해도 판매처가 다르면 책임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브랜드는 도매로 물건을 공급하고, 여러 온라인 판매자가 그것을 판매한다는 것.
그래서 교환이나 환불 문제는 판매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솔직히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소비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냥 “코데즈컴바인 속옷”일 뿐이니까.
어디에서 샀든 같은 브랜드라면 같은 책임을 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상담 과정에서 결국 팬티 한 장을 교환해 주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구매한 지 열 달이 넘은 제품이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브랜드 입장에서 단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건조기를 사용했다.
표시에는 건조기 사용 금지라고 되어 있었지만, 2023년에 산 것도 건조기에 넣어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같은 제품인데 왜 하나는 괜찮고 하나는 먼저 상하지?’

상담사도 아마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건 건조기 때문 아닐까요?”

아마 내부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소비자의 말을 그대로 믿을 것인가, 원칙을 지킬 것인가.
결국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하나를 교환해 주는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했다.

이 일을 겪으며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는 브랜드와 유통의 구조였다.
우리는 보통 브랜드를 하나의 회사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생산, 도매, 판매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다.
그 사이에서 책임도 조금씩 흩어진다.

또 하나는 사용자의 책임이다.
제품에는 분명 건조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편리함을 택한 것은 나였다.

그래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속옷은 건조기에 넣지 말자.”
“그래. 자연건조 하자.”

팬티 한 장 때문에 고객센터와 대화를 나누고, 유통 구조를 배우고, 건조기 사용 습관까지 돌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물건 하나에도 작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사소한 물건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팬티 한 장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한 교환 문제가 아니라
책임, 구조, 그리고 생활 습관에 대한 작은 성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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