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시작?
오늘 아침에 집에 들어가는 길에 대형버스가 길을 막고 있었다. 비상 깜빡이를 켜놓고 있길래, 무슨 차량일까? 왜 길을 막고 서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방향을 막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 버스를 지나쳤고, 잠시 후 버스를 향해 걸어가던 상주를 보게 되었다. 상주인 것은 그가 양복을 입고 있었고, 왼팔에 찼던 완장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가볍게 그 상주를 봤지만,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상주의 모습보다, 많이 늙어 있던 상주의 모습 때문이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상주라 함은, 어느 정도 중년 남성의 모습을 떠올렸던 거 같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향년 73세, 외할머니는 60대에, 그나마 외할아버지께선 오래 사신 편이라 86세에 돌아가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주였던 아버지나, 외삼촌이나 다들 40~50대였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갓집에 가는 일이 생겨도, 정년이 있다 보니, 대부분의 상주는 50대였을 것이다.
그런 고정관념이 나한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오늘 본 상주는 아무리 어리게 봐도 70대, 80대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러면, 돌아가신 어머니 또는 아버지는 못해도 100세는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다, 어느새 우리는 고령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릴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살만큼 살고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너무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심지어 할머니의 경우 지금까지 살아계신다고 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외할머니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동갑이었다고 했다. 2022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였을 때 100세를 넘기지 못한 것을 보고, 우리 외할머니도 살아계셨다면 참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10대도 아니던 때라,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을 때였다.
삶과 죽음, 우리는 어쩌면, 영생하는 첫 세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영생을 꿈꾸며 많은 연구를 하고 있으며, 화성을 가겠다는 머스크도 나이가 10살 정도 더 먹으면, 화성보다 장수를 꿈꾸며 뭔가 일을 낼 것 같다.
의학기술을 점점 발전하고 있기에, 지금의 70대는 이전의 70대와 다른 느낌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점점 더 건강해지고 오래 사는 세대가 나올 것 같다.
상주의 모습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생각이 지나쳐 갔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과연 몇 살까지 사실지 궁금해지면서, 오래전 딸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제이야, 제이는 아빠가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어?"
"음.. 몰라"
"제이 몇 살 때까지 아빠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생각 좀 해봐"
"100살?"
"그럼 아빠 130살까지 살아야 된다는 얘기네?"
"응 그러면 좋겠다~ 아빠 130살까지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