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를 마치고 나는 친구들과 페블비치, 요세미티, 나파밸리 등 부지런히 미국 서부를 여행했다. 미국의 자연은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눈에 담기만 하게 되는 장엄한 매력이 있다. 나는 싱크홀 그림자가 가끔 생각날 때면 불안에 휘청거렸지만 나름의 여정을 즐기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장면들이다.
그러다가 싱크홀 그림자가 정말로 미세먼지 심한 봄밤의 달빛처럼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허락된 도피의 시간이 무섭도록 빠르게 흐르던2011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급히 나에게 한국에 와달라고 하셨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통화를 마치고 무언가 본능적으로 뼛속 마디마디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승차감도 서비스도 너무 별로인 유나이티드 항공편을 급하게 구해 서울로 향했다.
# 아버지의 편지
위의 편지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말하자면 유서이다. 보통 유서하면 죽음 이후의 상황을 정리하는 내용인데, 아버지의 유서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것이다.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 치열한 의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버지는 쓸쓸하고도 간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편지를 건넸다. 아직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이 좌절하고 있는, 희망과 허무 사이에 어떤 표정이었다. 드디어 입을 떼신 아버지께서는 주치의와 상의해 보았다고 하면서, 지금 간과 신장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의학기술 수준은 담보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신장과 동생의 간을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나, 동생은 모두 당황스러웠다. 특히, 나는 그 "기부자" 명단에 없을뿐더러 갑자기 아버지의 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그것을 위해 엄마와 동생을 희생시킬 수 있는 칼자루를 쥔 느낌이었다.
편지 속에 있던 천사, 말기 판정과 같은 단어들이 곧바로 내 뇌에 흡수되지 않고 공기 중에 흩어져 맴돌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샌프란시스코의 햇빛, 페블비치의 석양 이미지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한편으론 "많이 부족한 아빠"라는 단어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했다. 미래의 21세기 여성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지도자의 핵심역량은 바로 불확실성 하의 탁월한 의사결정 능력이다. 엄마도 동생도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떠한 선택도 대가가 따르는 것이기에.
# Trolley Dilemma
전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다. 앞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묶여 있고 왼쪽 선로에는 한 명의 인부가 묶여 있다. 그대로 가면 다섯명이, 선로를 틀면 한명이 죽는다. 그리고 내 앞에 선로를 전환할 수 있는 레버가 있다.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이 트롤리 딜레마는 주로 자율주행 자동차의 윤리적 한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 딜레마를 꺼내든 것은 당시의 내가 아버지의 절박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자율주행 자동차가 되어수학문제를 풀듯이 접근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정성껏 접어 주신 편지를 일기장에 붙여놓고, 감정은 최대한 자제하고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주변 지인 중에 의사가 없어서 친한 동기, 스탠퍼드 대학의 다른 유학생 친구들을 통해서 수소문했었다.
과연 그 수술이란 것이 1)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 건지 2) 수술 이후 아버지가 얼마나 회복되는지, 수명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지 3) 연장된 수명의 퀄리티는 어떨지? 즉, 수술 이후에 아버지가 일반인처럼 등산도 다니실 정도로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을지, 더 이상 병원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는지 4) 간과 신장을 이식해 준 어머니와 동생에게 부작용은 없는지.
제한된 정보로나마 그때 내린 결론은 "No"였다. 아버지의 회복정도를 최대화하고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회복정도는 담보할 수가 없고, 심지어 3인이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을 진행했을 경우에 수술 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리크스가 있었다. 아버지는 간과 신장을 이식받고도 계속해서 입원해 계셔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결국 공리주의적인 선택을 했다. 내 가족 중에 더 많은 사람 지키기. 그리고 특히 동생은 어리니까 가능성이 창창한 존재. 이 선택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와 동생이 모두 아버지만큼이나 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바라보아야 했다.
# 샌프란의 석양, 낯선 이의 경고
이 모든 결정과정에서 나는 늘 그렇듯 덤덤하고 담담했다. 유학생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다. 싱크홀 그림자는 내 머리 위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나만의 숙제일 뿐,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극강의 E 파워는 크고, 밝고, 단단하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진중하게 말씀드렸다. "아빠, 지금 그 수술은 위험한 것 같아요.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장기이식 수술 시켜 드릴게요. 지금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엄마도 동생도 어찌 될지 모르고."
그 전화를 받고 나서, 아버지는 내내 창문 밖만 물끄러미 바라보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정월대보름에 아버지가 평소 너무 좋아하는 잡곡밥과 나물, 김을 싸가지고 요양원을 찾아갔는데, 전혀 드시질 않았다고 한다. 바로 전날까지도 샤부샤부가 먹고 싶다, 뭐가 먹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분이 그 이후로 곡기를 끊으셨다고 한다.
그즈음에 나는 또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석양이 주는 특유의 신경안정제 효과 때문에 나는 그 무렵에 자주 팔로알토에서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자주 갔었다. 잠깐 편의점에 들렀는데, 영화에서 보면 정말 수정구슬로 미래를 내다볼 것 같은 어떤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Be careful, you will lose one of your beloved family. But don't look back. Just focus on your future"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나는 급하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당일 비행기를 타고 황급히 귀국했지만 아버지의 발인이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장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너무나 벙쪄서 내 인식과 행동이 현실보다 계속해서 1분씩 뒤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또는 예고했듯이,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 선택의 무게를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