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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
by
Lady Spider
Mar 25. 202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술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읊조려 봅니다.
아버지, 요 며칠 3년 만에 진짜 봄이 왔습니다.
"왕관"이라는 이름처럼 전 세계를 군림하던
코로나 폭풍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곳곳에 핀 개나리와 벚꽃, 봄밤의 온기,
퇴근 후 왁자지껄한 도심의 거리,
기울이는 술잔들,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저는 십 년 전 아버지를 잃고서는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찾아 헤매다가
아버지의 큰 손을 닮았던 어떤 이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가 처음 편찮기 시작했던
바로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왜, 어느 삶의 단계에서, 이유 없이 토라지고,
침울해져서는 아버지께 마음의 문을 닫았었는지,
아파도 무언가를 먹고 싶고,
도전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께서
생명을 향해 얼마나 강렬한 투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을까요?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날아갔지만,
선선한 웃음, 유머와 생기, 삶을 향한 의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왜 저는 몰랐을까요?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던 아이를,
남산 도서관 앞에서
밤늦게 집에 가지 않던 소녀를,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안정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내린 서른 살 아가씨를,
육아도 성공도 놓치기 싫어서 안달하고,
남편이 나를 어찌해도 난 상관이 없다고
자신에게 매몰차게 굴던 그 사람을,
하나씩 차례차례 안아줍니다.
그리고 각자 돌아갈 곳으로 돌려보내 줍니다.
아버지, 이제 저는 알 것 같아요.
우리는 한평생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쌓아나가며 사라져 감을 보고,
저마다의 탄식에는 기쁨과 절망이 뒤섞여 있고,
희망과 허무는
한치의 오차없이 바싹 달라붙어 있음을.
그것을 가르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선택의 몫임을.
부재 속에는 부재가,
침묵 속에는 침묵이 남아
메아리 칠 뿐이지만,
사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끝이 났다가도 시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겼다가
밀어내기도 하면서, 차올랐다가 또
공허해지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그것인 채로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지금까지 다가온 모든 순간들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순간들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것 밖에는
남아 있지 않음을,
그리스인 조르바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다른 구원은 없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듯이
종말에도
행동이 있을 것임을.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리기 전에는
세상에 늦은 것이 없고,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듯 저는 아버지를 보내드린 순간부터
또 하나의 생을 얻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으로
진정성을 논하고, 여운을 남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신비스럽고 낯선 사람이
되려 합니다.
선택의 미로에서 탈출해서,
탁 트인 공기를 마시려 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디 하늘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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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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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도 관중에게도 흥미진진한 삶. 주어진 공식을 벗어난 실험적인 삶. 하나의 티끌이 되더라도 저항하고 뜨겁고 역동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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