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일이다. 나는 중국 북경 근무를 마치고 미얀마에 부임하기 위해 수도 공항으로 향했다. 끊이지 않는 환송회, 대사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 추억하며 쓴 손편지,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 흘린 눈물. 한 임지에서의 근무를 마무리하고 가는 나에게 이 모든 것이 다 있었는데 단 하나,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그건 내가 북경 근무 3년 동안 피, 땀, 눈물로 차곡차곡 모아둔 현지 화폐(위안화) 저축이었다. 그때까지는 코로나라는 것도 모르고, 중국 전문가니까 언젠가 중국 또다시 오겠지 하는 마음에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미련이었던 건지) 위안화 통장을 통째로 내비두고 떠나버렸다. 자그마치 7만 위안(한국돈 1300만 원 정도)이나 하는 거금이었다.
2021년 미얀마에서 복귀해서 서울로 돌아온 나는 하나은행 북경 지점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내 돈(피와 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익숙한 중국말로 "메이빤파(어쩔수 없다)..."하고 하며 결국 본인이 신분증 들고 직접 은행을 방문해야지만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 봤지만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에도 여전히 중국은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닫혀 있었다.
지난 5월, 나는 회사 관련한 모든 것을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데 문득 7만 위안이 떠올랐다. 맞다 내 중국돈!! 이제 (퇴사하면) 당시 내 여권도 활용할 수가 없을 테니 서둘러야 했다. 마침 중국 입국이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바로 하나은행 지점에 연락해서 내가 5.29 아침 10시에 돈 찾으러 가겠다고 선포했다. 중국은 매번 첨에는 요구하지 않았던 서류를 달라고 한다거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무언가 안된다는 것을 현장에서 통보하는 경우가 많기에, 나의 중국행은 무진기행처럼 안개 투성이었다.
중국 통장 안에 과연 내 돈은 있을까 없을까? 거의 하이젠베르크의 고양이 실험처럼, 고양이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확률이다!
# 괜시리 박수
5.26 금요일 마지막까지 담당 업무를 마치느라 꾸역꾸역 겨우 공항에 도착했고, 심리적으로는 한 시간도 채 안되어서 북경에 도착해 버렸다. 정말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2019년 이후 5년 만의 북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대사관 향발로 탄 택시에서 기사가 특유의 베이징 얼화(혀를 안으로 구부려서 굴리는 발음)를 엄청 많이 섞어서 나에게 말을 건다. "한국 가수는 이제 인기가 없어, 코로나라서 이제 사람들이 여행을 잘 안 가, 한국에서 잠깐 사업을 했었어. 한국 여자들은 중국 여자들보다 다소곳해. 등등"
나는 기사가 하는 말을 경청하며 중국어가 아직 살아있는지 스스로 실험해 보았다. 그러던 중 량마차오 똥팡똥루!! 대사관이 소재한 그 거리!! 에 도달하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련한 추억, 그 거리가 시야에 나타나자마자 열정으로 가득했던 내 30대 중반 시절이 한꺼번에 왈칵 되살아났다. "와~ 똥팡똥루(거리 이름) ~~ 메이궈옌방꽁위(미국 연방 아파트) ~~ 와~~~ 한궈 따스관(대사관) ~~~ 와~~~ 워헌싱푸(너무 행복해)"라고 내가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고 좋아하자 기사 아저씨가 "니 쩐머 쩌머 싱푸아(뭐가 좋다고 난리냐?)" 하는 반응이었다.
대사관 앞 스타벅스에도 가 보았는데, 갑자기 5년 전에 여기서 사람들 만나서 열심히 받아 적던 기억이 나서 울컥했다. 그렇게 내 뜨겁고도 차가웠던 30대 중반이 아직 이 공간에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 나에게 북경은...
요즘 MZ 세대들은 "시진핑" 이 싫어서 "시" 금치도 안 먹는 말도 있다 하던데. 나는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싫지만 중국 하면 떠오르는 향수들이 있다. 무언가 2% 부족한 감성, 겨울에 파자마에 패딩을 매치하여 나다니는 자신감, 맨 얼굴로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 속의 자유, 그리고, 병마개를 따면 방 한가득 퍼지는 백주 향기...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5년 만인데도 북경은 꽤나 변했다. 특히 그냥 사람들이 더 차분해 보였다. 좀 더 힙해졌다고 해야 하나... 하긴 워낙에 북경이 촌스럽고, 대충대충이고 삭막하고 했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무언가 달라진 그런 느낌이었다.
<수지>라는 와인바에 갔는데 인테리어가 깔끔했다. 사장님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광저우 출신 젊은 여성분이었는데, 중국 전국에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서 중국 느낌 없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비스로 주신 요리가 중국식 오이무침이어서, 오이무침에 화이트와인을 마시며 속으로 외쳤다. 역시! 반갑다 베이징!!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곳은 대사관 근처 개천인 "량마허"였다. 내가 일했던 당시에는 공사 중이었는데 드디어 공사를 완료해서 그런가 보다. 곳곳에 화려한 조명이 켜져 있고, 밤 시간인데도 서양 언니 오빠들이 량마허 변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 다 좋았는데 거기서 밤낚시를 하던 중국인들을 보니 또 푸흣 웃음이 났다. 이렇게 운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니, 여긴 어디, 난 누구. 수면에 비친 조명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하고 있는 마음이란. 내 돈 채굴하러 온 김에 어쩌다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