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로 전업을 하려다 보니, 어딜 가나 요가가 보인다. 북경에도 요가의 흔적은 보였다. 대사관 근처 쇼핑몰에 나무자세를 한 호리호리한 여성의 사진과 함께 "나의 내면으로 여행을"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요가원 광고가 있었다. 아디다스 매장 쇼윈도에는 제일 난이도가 높은 핸드 스탠드 자세를 한 마네킹이 있다. 여하튼 중국에서도 요가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배우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요가는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것인데, 그게 중국을 통해 초기불교가 가지치기 하고 나서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요가 원리나 자세들은 서양에서 소화된 것들이 많다. 언젠가 시간을 내서 추적을 해보고 싶긴 한데 1960년대 미국 서부에서 히피 문화가 발달하면서 인도의 요가가 히피문화의 일부로 수용된 것 같다. 이 역시 문송 슈퍼 제너럴리스트인 내가 추측한 것인데 얼른 깊게 이 문제를 파 봐야겠다.
# 싼리툰 탐험기
내친김에 주말에는 홀로 싼리툰을 탐험했다. 싼리툰은 베이징 조양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조양구에 외국 대사관이나 외국계 회사 지사들이 모여있어서 중국식 표현에 따르면 '서방화'가 된 장소이다. 맛있는 수제맥주집, 와인바, 각종 이국적인 식당들이 많아서 대사관 근무 시절에 많이 놀러 왔었다.
5년 만에 찾은 싼리툰은, 생각보다 붐볐다. 이제 막 코로나 정책 완화되고 조금씩 조금씩 활기를 회복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중국 사람들이 막 붐비는 거리에서도 자기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면서 완전 밀착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붐벼도 최소한의 공간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더 좋아진 건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싼리툰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타이쿠리 건물)에 자리한 애플 샵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었는데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한 삼성 샵은 아무도 없었다. 미중 간에 서로 못 잡아먹어서 갈등이다 경쟁이다 하는데 막상 애플은 수많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직업정신 때문이었는지 잠깐 동안 우연히 삼성 쪽에 사람이 없었을 뿐일 수도 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단골 수제버거집에 가려고 했었는데! 어렵사리 찾은 그 가게가 어느새 다른 가게로 변신해 있었다. 이런 게 세월이구나 하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뉴로탕몐(우육탕면)" 집으로 나도 모르게 들어와 버렸다. 맛집의 기운이 풀풀 나는 곳이었다.
탕미엔(탕면)을 먹을까, 아니면 빤미엔(비빔면)을 먹을까 매우 고민하다가, <찡디엔 홍샤오 뉴로탕몐>을 선택했다. "찡디엔"은 정통, "홍샤오"는 "붉게(맵게) 볶은"이라는 뜻이다. 정통이라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정수리로부터 국물을 흡입하는 느낌이었다. 원래 면을 잘 안 먹는데 얼마 남지 않은 면을 비비작 대다가 너무나 탱글탱글하고 간이 잘 배어있는 그 면들을 한숨에 내 위로 초대하였다. 옆에서 식당 아주머니가 날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 중국은 별로고, 대중국 외교는 어려운데, 중국 음식은 맛있다...
# 고양이는 있다: 어쩌다, 환차익
드디어, 월요일. 단지 이 날 은행일을 보기 위해 난 2박 3일 북경에 체류했다. 누가 들으면 엄청난 부자인 줄 알 것 같다. 은행일 보러 북경 오는 사람! 사실 "채굴"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그만큼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은행 직원에게 물어봤을 때 돈이 얼마가 있다고는 하는데 현장에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여권이 안 맞는다는 둥, 다른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는 둥, 혹은 당시 대사관에서 근무했었다는 증빙을 가져오라는 둥!!! 아마 중국 관련 일을 했던 사람들은 참으로 가슴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 10시에 도착해서 일을 봤는데 10분 만에 일처리를 끝내버렸다. 내 돈은... 살아있었다. 상자 안에 고양이는 존재했다! 그렇게 많은 연락을 취하고도 깅가밍가한 마음이 조금 남아있었는데 마치 빵 봉투에 담긴 빵처럼 내 피땀 어린 돈들이 어디 안 가고 살아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환차익을 봐 버렸다. 2019년 당시에는 1위안이 170원이었는데 지금은 180대 후반으로 뛰었다.
이로써 나는 아주 큰 작업을 끝냈다. 앞으로 내가 언제 다시 중국에 와 보려나. 평생의 방향이라고 믿어왔던 대중국 외교를 떠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마치 초등학교 때 반에서 늘 나를 괴롭혔던 아이를 두고 전학을 가는 느낌이랄까. 안녕~ 잘 있어~ 베이징. 언제 한번 고향에 놀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