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자국을 떼어봅니다.

"작가 되기" 프로젝트

by Lady Spider

# "작가 되기"의 마법


얼떨결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한동안 멍했다. 예전에 난 하루종일 좌뇌를 굴리며 회사의 틀 안에서 롤플레이를 하다 보면 남는 보송보송한 감성들을 페북 같은 sns에 풀어내곤 했었다.


시대 흐름을 좇아 싸이월드, 네이버 블로그, 페북까지는 왔는데 연식이 있는지라 트위터와 인스타는 아직이다.


그러한 글들은 내용이 어떠하든 내 개인의 감정적 배설을 위한 것이다. 책임감이 없다. 그러한 쪽글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남는 찌꺼기들을 모아 "이거 봐 나 이런 느낌이야"라고 지인들에게 알리는 상태 메시지 같은 것이다.


"작가"라는 단어에는 책임감이 담겨있다. 그래서 무겁고, 무거운 만큼 더디 나간다. 그러면서도 설레고 기쁘다. 뭐 쓰지? 뭐 쓰지? 다른 분들은 뭘 어떻게 쓸지? 하는 질문들이 최근의 내 독백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모두 특히, 요즘 같은 때엔 "작가"이면서 "독자"가 될 수 있다. 아마 그 비중을 따져보자면 반반일 것 같다. 그래도 작가임을 스스로 선언하고, 세상을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매개로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 글쓰기의 역사


내 글쓰기의 역사를 돌이켜 보니, 은근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멈추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 말이 일기라고는 하지만 미래로 정신 팔려 to-do-list로 바뀌거나, 업무 메모처럼 누군가의 전화번호가 적혀있거나, 또 은행 계좌번호가 남겨있기도 하다. 그래도 그것들은 자체가 역사이다.


솔직히 내 직업도 거의 80%는 글을 쓰는 일이다. 외교관은 다양한 국가와 접촉하고 그 결과를 "전문(cable)"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보고서로 남긴다. 때로는 역사가처럼 때로는 소설가처럼 외교관들은 사람을 만나고 열심히 기록한다.


또 윗분들 보고용으로 "한 장짜리" 간략 보고서도 쓰고, 알록달록한 표와 사진을 곁들여 정책/연구/분석 보고서도 쓴다.


그런데 이 글들은 그 용도와 계기가 어찌 되었던 한 영혼으로서 나 자신은 증발시켜 버린(물론 난 보고서에도 영혼을 담으려 애쓰지만) 메마른 글들이다. 메마른 글들은 의사결정자들의 눈에 닿고, 결정과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힘은 세지만 역시나 메마른 건 메마른 것들이다.


# 글쓰기의 현재, 그리고 미래


예전엔 사안의 본질을 꿰뚫고 외교방향을 바꿀 수 있는 조지 캐넌의 "Article X"(소련 행동의 본질 제하의 긴 전문으로, 이 전문을 계기로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바뀌었고, 이후 냉전이 시작되었다.) 같은 전문을 쓰는 게 꿈이었다.


이제는 브런치에서 내 경험을 여과 없이, 깍둑썰기 하거나 채썰기 하거나 어쩔 땐 갈아버리거나 하여 철저하게 개인적인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내 개인의 경험을 잘게 잘게 나누고 부술수록, 자세히 끝까지 들여다볼수록 우리 모두의 경험과 통하고 연결되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이다.


외무고시 3차 면접에서 면접관이 "공무원이 안 맞으실 것 같은데, 자기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 것 같나요?"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그때 나는 "거울색도 색이라고 할 수 있다면 거울색이 되고 싶습니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헛헛하게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작가"로서의 나도 거울이 되고 싶다. 사람은 저마다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바로 당장은 세 가지 "이별"에 대해 쓰려한다. 세 가지 이별 모두 현재진행형이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올해 안에는 끝날 일들이라는 것을. 더욱 중요한 건 이미 나는 2-30대의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자유에도 해방에도 얽매이지 않고도 자유로운 상태('알파'라고 명명한다)이다. '알파' 상태에서 난 신대륙에 땅을 일구는 개척자처럼 거침없이 탐험하고 이 역시 철저히 기록할 것이다. 공명과, 치유,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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