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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pider Sep 30. 2023

모든 엄마는 다 고슴도치다

미얀마에서의 자녀교육

# Self-made Recipe

자녀 교육은 결국 각자의 여건에 맞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만들게 되는 자기만의 레시피이다. 백종원이 맛있는 닭볶음탕을 만들기 위해 종이컵의 반을 설탕으로 가득 채운다 해서, 백종원 레시피를 아무리 따라한다고 한들, 결국 집집마다 각기 다른 닭볶음탕 맛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녀 교육법마저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소문난 학원이나 강사를 알아보고, 좋은 대학 가기 전에 좋은 고등학교, 좋은 중학교를 가야 하고 하는 법칙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다. 중요한 건, 시중에 나와있는 자녀교육 레시피들은 어떠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하나하나의 과정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일의 진정한 결과보다는 도중의 과정에 빠져서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자녀를 키워야 하는 워킹맘으로서는 국내 유명 프랜차이즈 레시피는 감히 따라할 수도 없는 그런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교육 문제를 내려놓지는 않았었다. 내 상황에 맞는 나름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가다나라, ABCD를 직접 가르쳤으니, 이제는 사칙연산을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말이 오면 토요일날 우선 개념을 알려주고, 하룻밤 자고 나서, 일요일 오후 켈리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아놓고, 일요일 오전에 토요일 알려준 개념을 테스트하면서 백점을 맞아야 친구들과 약속대로 만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너무 좋아했던 켈리는 일요일 오전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덧셈 뺄셈을 공부했다. 그렇게 나는 크게 욕심내지 않고 상황에 맞는 자녀 교육을 위한 나만의 레시피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갔다.


# Myanmar Kid, Kelly

물론, 양곤에도 한국 엄마들이 있었다. 주로 포스코 주재원 배우자들이었는데, 교육열이 엄청났다. 양곤에는 이들 엄마들이 몇 개월씩 기다려 자녀들을 보내는 국제학교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미국 국무부가 설립한 ISY(International School of Yangon)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국계인 BSY(British School of Yangon)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학교 모두 지원하지 않았다. 어릴 때 쉽게 배운 영어는 금방 휘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남편이 아직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홑벌이가 버는 소득으로는 국제학교에 보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양곤에 소재한 한국계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 그 유치원에는 인도,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영어와 미얀마어로 기초 교육을 받고 있었다.


켈리는 미얀마에 스며들어 미얀마 키드로 자라났다.  유치원에서 매일 아침 부르는 미얀마 애국가를 외워서 부르기도 했었고,  유치원 체육대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줄다리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세계 각국 전통복 패션쇼에서 예쁜 한복을 뽐내기도 했다. 조금 지나더니 미얀마 보모와 미얀마식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노 고잉(안 갈래)" "노 니드(필요없어)" 이런 식으로 부정어를 'don't' 이나 'not'을 안 쓰고 "No + 명사" 형태로 의사표시를 하였다. 왜 그러나 봤더니, 미얀마 보모가 그렇게 영어를 하는 것을 바로 배운 것이었다.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뭐 어때. 어차피 어릴 때 배웠던 외국어는 다 까먹는다. 무의식 어딘가에 자리잡을 수 있다면 참 좋은 것이고.  


#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워커홀릭 워킹맘과 해외에서 홀로 지내면서도 켈리는 참 잘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happy and independent girl"이라니, 새로운 상황에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주저하지 않는다니. 딱 내가 원하는 인간상이다. 나는 가르쳐 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정말 모든 엄마가 고슴도치인 것처럼 나 역시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하루는 참관수업에 갔었는데 켈리가 한 친구에게 "Don't take that toy! it's kindergarden's!"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너무 바른 말 하면 애들이 싫어할텐데'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 유치원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은 켈리의 말을 잘 듣는 모양새였다. 미얀마에서 지내던 마지막 6개월, 켈리는 심화반으로 올라가 영어를 더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계속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다.


사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아이도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접근했을텐데. 엄마로서도, 프로페셔널로서도 넘쳐나는 에너지를 어찌 할지 몰라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정답을 찾아가던 삼십대 후반의 시간들을 떠올리니 살짝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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