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곱살 되던 해 어머니는 만리동 외갓집에서 나와 함께 지나다가 결국 딸의 미래가 걱정되어 아버지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당시 혼인신고도 안하셨다 한다. 우리 가족은 응암동 반지하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 집은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어린 나는 밤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동안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가야했다. 장마철에는 습기가 너무 차올라 여름에는 "물먹는 하마" 노래를 불렀었다.
# 우리 아빠는 N잡러
지금은 여러 개의 직업, N잡을 갖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직업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는 시대가 아닌가. 아버지가 한창 젊은 시절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다.
아버지는 시골 산골에서 베이비 붐 세대로 태어나7-80년대 도시화 물결에 합류하셨다. 8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중학교를 중퇴하고 16살 되는 해에 무작정 서울에 상경하셨다 한다. 서울역 가판대에서 신문, 잡지, 장난감 안 팔아본 물건이 없다 한다.
바로 밑동생인 작은 아버지를 뒷바라지하시며 서울대 법대를 보내셨고, 사시 60명 붙던 시절에 사시까지 합격시키셨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 본인은 그렇다 할 지식이나 인맥없이 이런저런 사업에 도전하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하셨다.
우리 가족이 재결합했을 당시에도 아버지는 정해진 직업이 없었다. 겨울철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며칠밤을 새서 반지를 납품했고, 평소엔 듣도보도 못한 물건(예를 들어 잎파리를 건드리면 오그라드는 신기한 식물)을 팔기도 했다. 밤에는 라이브 바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셨다.
아버지를 매우 싫어하셨던 어머니마저도 아버지 노래 실력에는 반하셨다한다. 아버지는 기타를 연주하며 조용필, 노사연, 김수희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르시곤 했다. 그 때문인지 "만남", "애모" 노래의 멜로디는 나에게도 익숙하다.
# 보헤미안의 선구자, 90년대 욜로 라이프
직업 뿐 아니라 아버지는 소비생활마저 시대를 앞서나갔다. 물론, 그의 소득수준과 매치되지 않았다는 점 빼고는 말이다. 아버지 차는 당시 우리집이 위치한 골목에서 제일 비싸고 삐까뻔쩍했다.
이 각진 그렌저 구형. 이 차는 내가 생애 처음으로 타본 차이다. 각지고 늘씬하게 빠진 검은색 세단이 허름한 골목에 주차되어있는 매우 기이한 미장센을 상상해보라.
또한, 아버지는 얼리어답터셔서 무언가 새로 나온 가전제품이 있으면 할부로라도 구입하셨다. 스마트폰의 고조 할아버지격인 저 무전기같은 카폰이 당시 백만원 상당이었던것 같은데 아버지는 그렌저에 카폰을 달고 다니셨다.
직업이 없기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던 아버지는 애마 그렌저를 타고 언제든 전국 곳곳을 다니셨다
"우리 오징어회 먹으러 속초갈까? 오징어회하면 속초지!"하시며 바로 날 데리고 강원도로 갔다. 거기 약수물이 좋다더라시며 포천까지 가고, 미군 부대 햄버거가 맛나다더라시며 사오시고.
당시 내 몸은 차 뒷자석에 엎드려 다리를 쭉 뻗어도 충분했기에 아버지가 어딜가든 뒷자석에 엎드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논리야 놀자, 논리야 반갑다 시리즈가 내 최애였다.
# 그가 그 때 그 나이로 이 시대를 산다면
생각해보면 당시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다. 난 어릴적에는 마냥 아버지를 따라다니는게 재밌었지만 초등학생이 되어 부모의 직업란에 무언가를 써 낼 때가 오자 아버지가 창피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회사원,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평범한" 가정이 당연하고 좋은 것이라 여겼다. 다행히 "자영업"이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말이 있어서 난 어머니와 아버지의 직업란에 모두 "자영업"이라고 써 넣었다.
또한, 아버지의 욜로 소비 스타일에 대해서도 불만이 컸다. 어머니와의 잦은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고,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개미와 베짱이"에 나온 "베짱이"같다고 생각했었다. "베짱이"의 말로는 알다시피 추운 겨울 굶어 죽는 것이다. 아버지의 할부 습관을 보고 반복적으로 "반면교사" 삼은 결과, 지금의 나는 그러한 아버지와 정반대의,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대출도 없는, "제로 리스크"의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사실, 아버지는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이다. 우선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시골에서 올라와 지연, 학연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 요즘엔 전국 곳곳의 맛난 음식을 먹어도 먹방 유튜버, 여행 유튜버가 될 수 있다. 아버지는 유머가 풍부하신 분이었는데 그 때 그 나이로 이 시대를 살고 계신다면 정말로 더 진정한 파이어족으로 욜로 라이프를 구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