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빠랑 결혼하는거야?

요플레와 새우깡

by Lady Spider

# 유년기 기억

다섯살 이전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유년기 기억은 우리 몸과 마음에, 특히 무의식에 깊숙히 자리잡아 나와 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의식의 표면에서 정확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기억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마들렌처럼, 나에게 유년시절을 총체적이고 아주 날카롭게 상기시켜주는 두 가지 간식이 있다. 바로, 요플레와 새우깡이다.


오늘은 요플레와 새우깡을 보면 살아나는 감각, 그리고 어르신분들의 전언에 따라 재구성된 유년시절의 한 사건을 소개한다.


# 나, 아빠랑 결혼하는 거야?

다섯 살 때의 일이다. 부모님은 내가 다섯살 때 이혼하셨다. 합의이혼하셨다 한다(이혼소송을 진행중인 나로서는 굉장히 부럽다). 당시 어머니는 이혼 후 나를 데리고 친정에서 지내셨다. 그렇게 내 유년시절은 외갓집에서의 생활로 채색되어 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날 어디론가 데려가셨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인데, 내가 아빠 차 조수석에 앉아서 어디 가냐고 물었고, 아빠는 "이제 아빠랑 같이 살러 가자"라고 했었다. 어디서 본 것이 있어 같이 살면 결혼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나는 "그럼 나 아빠랑 결혼하는 거야?"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냥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끔 회상에 젖은 표정으로 그때 너가 그랬었지.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지하 공장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중고등학교에 졸업반지를 제작, 납품하는 일을 하셨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딱딱하고 차가운 마룻바닥과 각종 반지 제조 장비들, 반지 크기를 재는 도구, 반지라고 첫눈에 알아보기 힘든, 쇠로 만든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반지 꾸러미들.


아버지는 나에게 새우깡과 요플레를 주셨다. 어릴 때 많이 먹는 편은 아니어서 새우깡과 요플레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먹을 수록 새콤달콤한 맛, 적절히 부드러운 딸기 퓨레,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저녁 때는 아버지가 어디론가 나가실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마룻바닥에 누워 천장에 있는 기하학적 모형을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며 사각형, 마름모, 더 큰 사각형, 더 큰 마름모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더 심심해지면 불량처리된 반지들을 가져다가 반지 재는 기구로 크기를 재서 분류하는 놀이를 했었다.


# 석양의 거리

계속 지하 공장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은 아버지가 잠깐 나갔다 오겠다시더니 깜깜 무소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요플레와 새우깡을 다 먹고, 사각형 마름모 만들기 놀이를 반복해서 하자 어느새 지루해 지고, 분류했던 반지들을 다시 합쳤다 시 분류했다 하기를 여러번 했더니 문득 "나 홀로 있음"이라는 것이 온전히 느껴졌다.


좁고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면 바깥인데, 바깥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두려움을 이겨낼 때쯤, 나는 계단을 올라 공장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맞은 편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앞에 펼쳐진 거리가 다섯살의 나에겐 태평양처럼 넓어보였다. 과연 이 길을 건너 파출소로 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몸은 이미 파출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파출소 문을 있는 힘껏 밀어 열었고, 다행히 난 외갓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외할머니께서 날 데리러 오셨고, 그 이후부터 난 외갓집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그 지하 공장에 며칠이나 지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곳의 쇳소리, 금속성의 냄새, 혼자 마룻바닥에 누워 무한개의 사각형과 마름모를 세던 기억, 석양이 내리던 연희동 거리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버지는 나의 첫 결혼 고려대상이자, 공장장이고, 홀로 있음의 공포와 즐거움, 태평양 같은 거리를 한달음에 내달을 수 있는 용기를 알려주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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