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갑갑한 반지하집을 벗어나 화장실이 실내에 있을 뿐 아니라 욕조까지 갖춘 2층 빌라로 이사를 갔다. 내 방 창문 밖으로 맞은편에는 외갓집이 보였다.
어머니가 계속 종각역 상가에서 옷가게를 했기에 끼니때가 되면 외할머니는 **야~ 밥 먹어라~ 하셨고, 나는 밥을 먹기 위해 10분 거리의 외갓집으로 향했었다. 나는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폐 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가득 들어오도록, 아이들의 형체가 어둑한 공기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까지 얼음땡, 숨바꼭질,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아버지는 구형 각 그렌저보다 훨씬 부드러운 곡선으로 늘씬하게 빠진 "신형" 그렌저를 뽑으셨고, 그 차를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애마로 삼으셨다. 아버지가 이름도 기능도 잘 알기 힘든 물건을 할부 구매하시거나, 신기한 사업을 시작해 보시겠다고 호기 부리실 때, 어머니가 말리시며 속상해하실 때 말곤 우리 가족은 비교적 평화로웠던 것 같다.
# 소녀 파브르의 호기심 천국
사진 속 동물들은 내가 어릴 적에 다 키워본 혹은 잠시 동안 우리 집에 단기 투숙시켜 본 동물들이다. 개구리 스무 마리, 거북이 다섯 마리, 다람쥐 세 마리, 잉꼬 두 마리, 햄스터 두 마리, 두꺼비 한 마리, 잠자리 상자 한가득, 매미 상자 한가득, 송충이 한 마리, 사마귀 한 마리... 정말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평범한 반려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아,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귀찮아해서 살짝 현관문이 열린 틈 사이로 가출해 버렸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당연히 남다른 아버지 덕분이었다. 원할 때 산으로 들로 딸을 데리고 탐험할 수 있는 무한한 시간적 자유, 시골에서 자라나 자연 속에서 생물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 그것들을 포획해 낼 수 있는 동물적 감각과 스피드, 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것이 아버지였다.
숲 속에서 잠자리나 매미를 잡을 때 아버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 냥이 집사로서의 경험에 따르면, 아버지의 눈빛은 장난감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사냥 모드의 고양이의 눈빛과 비슷한 것 같았다. 한 손으로 개구리를 잡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 양손으로 나무기둥을 잡은 상태에서 입술로 매미를 잡으셨을 때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웅 같았다.
한 번은 아빠와 내가 참개구리 사냥에 심취해서 결국 스무 마리까지 잡았는데 한번 키워볼까 하고 아버지 애마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다. 그날부터 난 6개월 간 개구리 이십 마리를 욕조에 가득 채우고 개구리 관찰 일기를 썼다.
그 무리 속에 개구리 한쌍은 천생연분을 만나 기다란 우무질에 쌓인 알을 낳기도 했고, 남달리 몸이 가볍고 물갈퀴의 흡착력이 좋았던 청개구리는 화장실 타일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어느새 사라졌는데, 어느 날 나는 등굣길에 길바닥에 말라비틀어진 청개구리를 발견했었다. 역시 청개구리처럼 무리들 중에 튀면 이렇게 되는 걸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결국 나는 스무 마리 모두 살리지 못하고 열아홉 마리를 방생해 주었다.
동물들은 나에게 날 것 그대로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잉꼬부부가 금술이 안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귀엽게 생긴 다람쥐도 자기 짝과 케미가 안 맞으면 공격한 곳을 계속 공격해서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거북이들 간 달리기 시합을 많이 시켜본 결과, 거북이가 절대 느린 동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사마귀는 "당랑거철"이라는 말처럼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인간을 대상으로도 싸움의 태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지 않으면 엄청 괴로워한다는 것도 직접 보았다.
아버지와 나는 평일에 아무도 없이 텅 빈 서울 대공원이나 남산 공원을 맘만 먹으면 갔었다. 서울 대공원이 침팬지나, 남산 공원의 원숭이들은 전부 아버지와 소통이 가능한 친구들이었다. 비단구렁이, 사자, 호랑이, 곰... 주말에는 인기 꽤나 많아서 아버지 무등을 타야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나는 원하는 때 오랫동안 구경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나는 거의 정면으로 찍은 게 없고 어떠한 사냥, 관찰 대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진뿐이다.
지나고 보면 엄청나게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호기심은 나의 본질에 가까운 특성인데, 아마도 어릴 적 이러한 다양한 동물체험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호기심은 뭐랄까,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사회학자, 인류학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힘을 준다.
# 질병의 그림자 : Winter is coming
그래, 아버지가 편찮으시기 전까지는 우리 가족도 그럭저럭 잘 지냈구나. 글로 적다 보니 도달한 결론이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스무 마리의 개구리를 잡아주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분이셨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질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그의 습관이, 마음이, 질병을 초대했는지 모른다. 잦은 사업 실패로 분노의 감정이 쌓였을 것이고, 밤에 밴드 보컬로 일하시고 그 시간에 야식을 드시다 보니 생활리듬이 엉망이었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식탐이 강한 편이셨는데, 어릴 적 가난한 탓에 못 먹어본 음식이 많았던 게 한이 되셨는지, 먹고 싶은 음식은 바로 애마를 타고 달려가서 대량으로 드시는 대식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