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서 사추기까지

폭풍의 계절

by Lady Spider

# 동시성의 원리

열두살 무렵에 나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딱 그때 아버지에게 당뇨병 판정이 났다. 그리고, 나보다 11살 어린 남동생이 태어났다. 지금 내 머릿 속에 이 세 가지 사건은 선후관계도 뚜렷하지도 않고 인과관계는 더더욱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오기에, 그것이 아버지 때문에 왔다고 할 수 없듯이. 어머니는 종각역 상가 옷가게를 정리하고 그 동안 모았던 돈을 투자해서 은평구청 근처에 "곰돌이" 노래방과 "라밤바" 단란주점을 개업하셨다. 사실 원래 사장님은 아버지였다. 작명에서 느껴지는 귀여운 감성도 아버지의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반복된 사업 실패에 지쳐서 아마도 동업자로 나서면 그나마 통제가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으시면서 어머니는 모든 것을 떠안게 되셨다.


어린 동생은 또 다시 외할머니가 맡게 되셨다. 당시 5학년이었던 나도 동생을 돌보았다.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했던 동생은 외할머니의 고봉밥을 먹으며 포동포동 귀여운 아이로 자라났다. 그런데 내 동생이 자라나는 만큼이나, 아버지의 병도 나아질 기미 없이 종류도 많아지고 증세도 심해졌다. 처음에 당뇨병으로 찾아왔던 병은 그 사이에 신부전증, 간경화로 발전했다. 아버지는 언제 어디서든 하루에 세 번 정도는 복부에 있는 구멍을 통해 삼투압 투석을 해야했다. 참 이상했다. 아버지는 술도 담배도 안하시던 분이었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셔서 잠이 드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간경화라니. 아직도 이해가 잘 안된다. 이러한 동시적이고 독립적인 사건들은 마치 울돌목에서처럼 나의 내면에서 더욱 큰 소용돌이로 자라나 폭풍의 계절이 되었다.


# To Be, or Not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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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사춘기 때는 한 두 개의 "화두"를 가지고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나만 심각한 줄 알았는데,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처하든 저마다의 고민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 그 질문은 "왜 우리 엄마는 아빠에게 돌아왔을까?"였다. 분명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생각나고 눈에 밟혀서. 외할머니는 당신의 딸이 남편을 잘 못 만나 고생하는 게 너무 안쓰러웠는지 늘상 "니 애미가 너 때문에 고생한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자존심이 무척 셌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참 다행이고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억울한 게 컸다.


'내가 다시 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하는 못된 생각이 났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께 감사하고 미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운 양가적인 감정도 있었다. 그렇게 내 스스로도 "용서"하기 힘든 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든 증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바로 성적이었다. 초딩 2학년 때 전과목 백점을 맞았을 때 어머니의 표정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힘든 만큼 나도 힘이 들어야 했고, 힘을 들였다면 결과치로서 증명을 해 보여야 했다. 어머니의 촛불이 되자, 타들어가는 불꽃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이런 불 같은 감정은 종종 반항심으로 튀어나왔다. 6학년때 반장이었던 나는 괜시리 담임 선생님께 반항을 했다. 담임 선생님이 맡으신 과목을 할 차례였는데 반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가버렸다. 지금의 공무원 새가슴인 내가 돌이켜보면 거의 실낙원의 루카스 정도의 반항이 아닐까 한다. 회사 동료가 말한 것처럼 면도칼 씹고 다니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친구들과도 놀아봤다. 호기심에 반항심이 결합한 행동이었다.


#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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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중학생 때까진 HOT 팬클럽도 들고, 친구들과 놀러다니기도 하고 했었는데 중3 때부터 외고에 진학하겠다고 특목고 학원에 다녔었다. 외고에 가면 커리큘럼이 좋아서 학교 공부만 충실하게 따라가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외고는 완전히 신세계였다. 말괄량이가 수도원에 간 느낌이었다. 선배 언니들은 귀에 항상 무언가를 꽂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같은 영자신문을 읽거나 "과학혁명의 구조"나 "전쟁론" 같은 원서를 읽었다. 나는 6학년 때 윤선생 파닉스로 알파벳을 처음 배웠는데, 같은반 친구들 중에는 해외에 살다온 경우가 많아서 영어 발음이 정말 원어민 같았다. 나도 그들처럼 허밍하듯, 리드미컬하게 영어 교과서를 읽고 싶었다. 제2외국어는 독일어였는데, 독일에서 살다 온 친구들도 꽤 있어서 수행평가로 독일어 연극을 하는데 나는 그냥 까마귀 역할을 맡았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까마귀는 "까악"하고 우니까.


무엇보다 적응이 안되었던 것은, 그냥 세상 아무 일이 없고 평온한 듯한 친구들의 표정과 말투였다. 우리집에선 계속 전쟁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친구들은 뭐가 그리 반갑고 행복한지 공감이 안되었다. 그래도 내신은 나쁘지는 않았었지만, 그냥 제논의 역설에서 처럼 단지 한 발 먼저 출발한 거북이들을 저 멀리서 바라만 보는 토끼가 된 느낌이었다. 또 충격을 받았던 점은 외고를 다니더라도 과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등록금도 만만치 않은데, 과외를 받아야 하다니. 너무 불.공.평.해!


무언가 이런 알 수 없는 꼬임을 느끼고 있던 나는 어느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책을 읽고, 불현듯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 마음이 짙은 보라색이었던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메스로 수술하듯 해체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정신과 의사"라는 것도 그 당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자기합리화 구실이 아니었나 싶다. 하여간 나는 외고에서는 이과 수능시험을 볼수 없다고 하면서, 또 외고 내신으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부모님을 설득해서 자퇴를 했다.


나는 당시 나에게 들어가는 모든 돈이 아까웠고, 죄스러웠다. 그래서 학교 교복을 입고 새벽같이 나가서 남산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했었다. 하루는 집에 갔다가 다시 도서관에 나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남산 도서관 앞 정자에서 혼자 캄캄한 밤에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택시 기사가 집까지 데려다 준 적도 있다. 기사 아저씨는 일부러 남산 고개 지나 한남동, 이태원 쪽을 보여주며, "너 거기 있다가 이상한 사람에게 잡혀가면 저렇게 될 수 있어"라고 하셨다. 택시 창 밖으로는 늦은 밤 택시를 잡으려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참 많았었다. (이렇게 내 목숨과 인생을 구해준 날개 숨긴 천사에게 감사하다)


# "오겡끼"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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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사춘기는 아버지의 병과, 그로 인한 어머니의 고생 때문에, 알 수 없는 분노, 억울함, 색채로는 짙은 보라색, 멜로디로는 자우림 노래 같았는데, 그래도 좋았던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보면서 건강에 대한 지식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일찍이 현미 잡곡밥을 먹었다.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하고, 라면이나 탄산음료,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는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아버지는 각종 매체를 통해 흡수한 건강 지식을 어린 나에게 설파하셨다. 정규 교육은 받지 못하셨지만 아버지의 건강 상식은 거의 영양학과 전공학생 정도였다.


아버지는 인슐린이 무엇인지, 혈당이 무엇인지, 신장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다 알려주셨다. 게다가, 집 책꽂이에는 늘 "병을 이기는 식사습관" "생식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하도 건강녹즙, 건강 현미밥 등등을 시도하셔서 이미 나는 샐러리 갈아넣은 녹즙이 "무언가 건강한 맛"이라는 것을 입력시켰고, 지금도 슴슴하거나 씁쓸하거나 맹맹하거나 한 "건강에 좋을 것 같은 맛"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몸살 감기에 걸려본 적이 거의 없다. 대학 시절에는선배들과 해 뜰때까지 술 마시고도 새벽 수영 클래스를 갔었다. 선배들은 나를 "오체력" "오겡끼"라고 불러주었다. (이로써 나의 성씨가 공개된다) 외교부 3차 면접에서도 마지막으로 당신이 왜 외교부에 와야 하는지 어필하는 부분에서 나는 "체력"이 좋다고 호언장담했다. 아마도 알게 모르게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알아보고 사오신 건강식품들, (우리 가족은 매 식사마다 그것들의 효능에 대한 아버지의 강의를 듣고 시음해야 했다), 그때 뭣도 모르고 이것저것 주워 먹은 건강식품들이 아직 내 몸 속에 남아 "오겡끼"를 구성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듯, 가족의 투병은 건강의 소중함을 온 몸에, 뼛 속까지, 새기는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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