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숙제를 주다

인간으로서의 나의 저작권

by 마흔아홉

오늘은 무엇을 할까?

매 순간 하던 고민을 브런치가 해결해 주었다.

세계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 숙제가 생겼다.


무언가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잡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고민이 시작되었고, 한 학생의 글을 보게 되었다.


"같은 반 친구가 저를 따라 해요. 말투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취향까지도요. 이 친구 때문에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받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누구나 저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새로 산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났는데 며칠 후 똑같은 옷을 입은 친구를 보게 됐다던가,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고 친구에게 자랑했는데 동창회에 같은 가방을 들고 나타나서 뻘쭘했다던가 하는 기억들 말이다.


처음 한 두 번은 우연이겠지 하고 넘어가지만 반복되다 보면 뭐지? 하는 묘한 불편함이 드는 이런 상황들은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고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나를 따라 하는 그들에 대해 불편함을 넘어, 짜증이나 불쾌감까지 느끼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을 따라 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사회 속에서 그 본성을 완성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라는 무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이중적인 욕구가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더불어 살아가지만 내 것만은 침해당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 말이다.


그 인간은 자신만의 개성, 나만의 것을 소중히 여기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친구가 콕 집어서 따라 했다?

그래서 나만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대놓고 화내기도 그렇고 그런데 어쨌든 기분은 나쁘고 뭐라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하다.


어릴 때야 연예인의 스타일도 따라 해보고 친구도 따라 하다가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을 알게 되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서로가 다른 특성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진 개성이라고 할 수 있고 이야말로 내가 스스로 일구어낸 나의 모습,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나, 바로 인간의로서의 저작권이라고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저작권은 <문학, 음악, 영화,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이다. 나는 여기에서 창작물의 고유성과 독창성에 주목했고 이를 인간 개개인의 경험과 스타일, 가치관 등을 인간으로서의 저작권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말하는 개성에 해당하는 부분 말이다.


무튼, 저작권은 창작자의 독창적인 표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창작자의 경제적 권리와 인격적 권리를 보호한다. 하지만 창작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보장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저작권법은 그 창작물을 보호함으로써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친구가 나를 따라 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저작권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친구가 나의 동의도 없이 나를 따라 함으로써 나의 한 인간의로서의 저작권이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째서? 지금부터 생각해 보자.


나를 따라 하는 사람은 내가 공인이나 대중연예인이 아닌 이상 같은 반 친구나 직장 동료 등 지인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그들이 언제나 나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와 나는 언제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나온다? 기분 좋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루이뷔통 3초 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말이다. 길을 걷다 3초마다 루이뷔통백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결국 루이뷔통 3초 백은 많은 여성들에게 소비된 탓에 짝퉁도 많았고 상당기간 인기가 떨어져서 매출이 줄었다는 말도 있다.


이 사례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갈 것 같다.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저작권적인 관점에서 인격적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인간적으로 기분이 상했기 때문으로 이는 인간으로서 누리고 싶었던 나의 개성에 대한 인정욕구가 침범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사숙고해서 고른 나만의 옷, 가방, 액세서리는 나라는 인간을 완성시켜 주는 나만의 개성이면서 자부심으로도 연결된다.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이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인간에게는 누구나 내재되어 있는데 친구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따라한 것 자체가 나만의 개성을 강탈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르기 위해 투자했던 나의 시간과 노력들이 누구나 입고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과연 나는 나의 경제적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다. 친구가 훔친 것도 아니고 본인의 돈을 지불하고 정상적으로 구매한 것인데, 왜 나의 경제적 권리를 침 했다고 여겨지는 것이지?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를 따라 하는 친구는 결국 나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누군가이기 때문이다. 나를 따라 하는 친구는 애초부터 따라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나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그와의 자리를 피한다거나 아니면 다른 아이템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면 그 만남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인연, 정보 등을 상실할 가능성이 다분하니 이것이 나의 경제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면 뭐라 말할 수 있단 말이냐 말이다. 더구나 그 만남을 피하지는 못하겠는데, 똑같은 아이템을 장착한 친구를 보고 있자니 열불이 터져 할 수 없이 내가 다른 아이템으로 갈아탄다면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 또한 경제적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가진 나만의 개성이자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은 결국 나뿐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작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누군가의 노력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사회적 신뢰를 해치는 행동이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으로서의 사회화가 덜 진행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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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보호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사회화에 따른 사회성에 바탕을 두고 생각해 보면 창작자와 이를 공유하는 대중 간의 사회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타인을 따라 하는 것일까? 단순히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방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배우며 흉내 내는 모방을 통해 발전하고 진화해 왔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인간은 타인을 모방하면서 발전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모방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이라는 법적 제도를 통해 기준점을 제시함으로써 창작과 모방사이에 균형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타인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진화하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사회화를 이루어간다.


사회화란 인간이 성인으로 성장해 가면서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또는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행동하면서 자신의 인성과 가치관, 신념, 태도 등을 형성해 과정을 말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부여한 사회적 지위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며 필요한 행동을 습득하면서 같은 집단 구성원들과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화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의 삶에 노출되고 이러한 노출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각자가 넣을 것은 넣고 뺄 거는 빼는 과정을 거쳐 '나만의 개성, 나만의 경험'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인간의로서의 저작권으로 완성시켜 가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성과 저작권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별개의 주제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둘이 매우 밀접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창작과 모방, 인정욕구"가 인간의 사회성과 저작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교각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회화는 인간이 사회집단 성원들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행동을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이는 사회의 집단 성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충족의 과정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저작권은 창작자의 이름과 기여도를 법이라는 제도하에 보호함으로써 사회 성원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사회적 인정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성이란 '우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본능인 동시에 생존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도 집단의 힘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메커니즘이 사회성이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개미 천마리가 모이면 맷돌도 든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우리 선조들의 수많은 속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아주 작은 일도 혼자 보다 우리의 관계 속에서 하면 더 효율적이다라는 뜻과도 같다.


이를 창작자, 저작권자와 대입해 보면 우리가 왜 저작권을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창작자의 수익보호가 원칙이며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창작자가 될 수도 이용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성과 저작권은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나를 따라 하는 이에 대해서는 불쾌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이들과 함께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있고 함께 있고 싶고, 나누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 것이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상황은 싫은 그런 관계로 말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부모를 통해 언어를 배우고 예술, 문화, 기술들은 모방을 통해 후대로 이어지지만 이러한 모방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숙제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는 베껴도 되며, 어디부터는 베끼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 저작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정욕구를 인정해 주고 동시에 그에 대한 보상을 지속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것이 저작권이며 사회화를 통해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에게 있어 모방과 창작의 경계에 대해 기준을 제시해 준 것이 저작권으로 창작자는 저작권을 통해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굳힘으로써 인정욕구 충족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작권은 인간 사회의 윤리규범이자 약속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자는 목적과 그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나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면 남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인식,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성과 저작권 사이의 관계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작권이 모호한 시대를 살아왔다. 저작권 개념이 전무하다시피 한 80년대에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길보드차트가 당연한 시절을 거쳤고 대학 강의 교재를 사는 친구는 바보 소리를 들을 만큼 교재 복사는 흔한 일이었다. 학교 내에 강의 교재를 복사해서 제본해서 파는 복사실은 당연시되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길거리 어디에서나 캐럴이 24시간 흘러나왔고 소리바다, 토렌트 다운로드 사용이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매월 구독료를 지불하며 서식과 포토샵을 사용하고, 당당하게 캐시를 지불하고 웹툰을 즐기며 전자책을 구매해서 읽는다.

여전히 책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러기에 내 눈은 너무도 퇴화되어 버렸다. 돋보기 없이는 활자를 읽기조차 버겁다.


저작권이 모호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저작권이 분명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로서의 사회회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다. 여전히 가끔 금액을 지불하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꼼수가 없을까? 하는 못된 생각이 들곤 하는 건 내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보다 20세기를 살아왔던 나로서의 시간이 더 길었던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의 인간의로서의 사회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 복사물 이용을 당연시 이용했던 나에서 구독료를 지불하고 콘텐츠를 즐기는 지금의 나로 사회화가 진행되었듯 앞으로도 나는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창작물을 즐기는 인간으로 진화해갈테니 말이다.


인간은 항상 그렇게 사회화를 거쳐 진화해 왔으니 저작권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 진화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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