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변명
나는 나름 꽤 유명한 달동네에서 태어났다.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알만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달동네다.
전화기도 한 집 밖에 없던 그 시절에,
텔레비전이 있던 집은 동네에 딱 한집이었고
(그 시절은 대부분 그러하기는 했다)
대문 밖에 있던 공동화장실이 화장실의 전부였던 동네.
밤마다 요강을 방문 앞에 두고 자야만 하는,
그게 내가 기억하는 동네의 전부였다.
그 시절 태어난 또래들 대부분이 그러했기에 달동네라는 사실도 몰랐었다.
다섯 살 무렵 그 동네를 떠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후 그렇게 힘들게 살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절 우리 세대에게 못 산다는 기준은 육성회비를 내냐, 못 내느냐 정도였었다.
30년지기 친구중 하나는 지금도 육성회비를 못내
교무실로 불려가던 그 시절만 생각하면 치욕스럽다고까지 한다.
충청북도 끝자락 시골처녀,
딸부잣집 셋째 딸인 엄마는 배고픈 서러움이란 것을 모르고 자랐고,
지지리도 가난하던 집안의 장남이었던 도시총각
아빠는 열 살 남짓한 무렵부터 생계를 위해 일을 하던 늘 배고팠던 아이였다.
엄마에게 감자, 고구마, 옥수수, 보리는 별미일 뿐이었지만
아빠에게는 기억조차 끔찍한 배고픔일 뿐이었다.
사돈의 팔촌의 건너 건너 아는 지인들의 중매로 선을 봤고,
덜컥 임신부터 했고,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그렇게 가난한 집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결혼할 당시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한참 되었고
모든 경제권은 큰 외삼촌의 손에 있었으며,
여동생들의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속옷 한벌, 숟가락 한 짝조차 혼수로 해가지 못한 엄마는
가난한 집안에 입만 보탰다며 혹독한 시집살이와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나를 안고 찍은 사진 속의 엄마는 수심만 가득 보였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뒤 엄마는 아빠와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혼식 사진에서도 엄마의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엄마의 말로는 웨딩드레스 가 맘에 들지 않아셔였단다. ㅎㅎ
결혼식도 전에 나를 낳은 엄마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외가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고
본가에서는 결혼도 전에 딸만 낳은 죄인이 되었었다.
그런데 어째서 엄마만 죄인이 되어야 했을까?
아빠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왜, 모든 화살은 엄마에게만 향했었는지.
아빠만의 잘못은 아니라지만,
참... 그렇다.
이럴 때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게 고달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딸랑 방 2칸, 곤로 하나 간신히 들어갈만한 부엌 그리고
손바닥만 한 마당이 전부였던 그 집에서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총 12 식구가 살았다.
고작 스물여섯의 엄마가 얼마나 눈치를 보며 살았었을지
또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만 해도 그때의 엄마가 안쓰럽다.
숨죽여 눈치 보며 살던 엄마에게 면죄부를 주고
아내이자 며느리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부여해준 건
다름 아닌
바로 이듬해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을지 감히 나는 상상조차 안된다.
나는 엄마에게 있어 이브의 사과였고
그는 존재의 증명이었다.
엄마의 아들에 대한 그토록 지독한 짝사랑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증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 후부터는 그저 엄마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엄마에게는 존재의 증명이었고
아빠에게는 존재 그 자체인 아들이었다.
슬프지만.
엄마와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의심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딸에게 두 분이 주실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받았고,
충분히 사랑받고 컸다.
딸아들 차별은 겪었을지언정.
그건, 그냥 그들의 세대, 광복도 전에 태어난 그들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기로 했었다.
생의 마지막 날,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아들의 외면으로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던 것일까?
그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것일까?
엄마가 돌아가신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아빠도 엄마를 따라가듯, 돌아가셨다.
이제는 두 분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휴일,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두 분이 계신 봉안당에 다녀왔다.
아직 그는 다녀가지 않았다.
그리고
긴 연휴의 끝을 뒤로한 어버이날 아침, 출근길에 다시 찾아갔다.
며칠 전에 우리가 달아드렸던 꽃만 덜렁 있을 뿐,
역시나 그는, 다녀가지 않은 모양이다.
가져와야 할 모든 것이 이미 그의 손안에 있으니, 찾아야 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엄마를 위한 변명은 나를 위한 위안이다.
엄마를 이해해야만 나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보내줄 준비도 안된 채 보냈던 엄마를,
그리고
.
.
.
보내달라고 보챘던 아빠와 지금에서야 헤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