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채 비틀거리며 안방을 나온다. 가끔 티브이 속 리얼리티쇼에서 아침에도 정갈하고 반듯한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 경탄하곤 한다.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 불을 켠다. 김밥에 함께 곁들이면 좋을 것 같은 많은 음료들 중에서도 나는 단연코 녹차를 뽑는다. 그냥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다. 우려내는 녹차 잎이면 더없이 황송하겠지만, 가루 녹차도 좋다. 아주 귀찮다면 티백 녹차도 상관없다. 녹차물에 살짝 말린 보리굴비의 궁합이라고 해야 할까? 굴비만큼의 비릿함은 없지만 잘근잘근 씹다 보면 당근에서도 뭉근하게 품어져 나오는 비릿함이 느껴진다. 그때 그걸 상큼하게 잡아주고 혀 안을 꽉 조여주는 것이 바로 녹찻물이다.
주방은 생존에 필수적인 공간이다. 집 안에서 가장 많은 소리와 냄새를 풍기며 허기진 배를 재촉하는 조급함의 공간이면서 요리 노동하는 이의 뒷모습을 또렷하게 증명하는 공간이다. 타인에게는 기대의 공간이지만, 직접 음식을 만드는 이에게는 시달리는 공간이다. 주방에 모두 갖춰진 도구들은 쓰이고 놓이고 씻기고 또 쓰인다. 나는 김밥 만들기를 좋아한다. 맛의 풍미를 살려줄 많은 재료가 들어간 김밥도 좋지만 소박한 김밥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사는 제주도는 당근으로 유명하다. 우리 뒷 집 인심 좋은 할머니께서 당근을 한 아름 주셨다. 나는 당근을 얇게 채 썰어 5분 정도 소금에 절인 후 올리브유를 살짝만 두르고 당근을 볶아내면 묘하게 트러플 오일 향 냄새가 난다(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압력솥에 갓 지은 찰밥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밥을 양념한다. 나는 여기에 찹쌀을 살짝 가미해 밥에 찰기를 더한다. 그러면 김밥이 쫀득해지는 식감을 맛볼 수 있다. 재료의 변화가 식감의 변화와 맛의 감각을 다르게 바꿔준다. 여하튼 나는 채소 김밥이 좋다. 속도 편하고 아이에게도 야채를 먹일 수 있으니 더없이 기분 좋은 김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김밥이 완성되었다. 칼로 조심스럽게 하나씩 자르고 깨소금을 뿌려주면 끝이다. 만드는 과정은 조금 번거로웠지만 식탁에 놓인 단출한 김밥과 따스하게 피어오르는 숲 향기의 녹찻물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오늘의 노동과 수고스러움에 스스로 대견한 기분이 들게 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감사합니다” 당근에게 김에게 밥에게 소금에게 모두에게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