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by 밍장

제목은 김신지 작가님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 나오는 구절이다.


천호동을 갔다가 책을 읽고 싶어서 교보문고에 들렸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부끄럽지만, 아직 다 읽지 않았다.


반 정도 읽었는데 내용은 내가 감히 설명을 할 수 없으니 한 번 찾아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아주아주 편안하고 귀엽고 감성적인 책이다.)


나는 그렇게 막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냥 필이 오면 읽는 편이다. 그렇게 가끔씩 읽는 책에서 가슴에 팍! 박히는 구절이나, 머리를 빡! 때리는 구절들을 읽게 되면, 나는 그 구절만 열 번 이상을 다시 읽는다.


너무 좋아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글을 지었을까 감탄하면서. 가까이. 글자의 한 획씩 하나하나 들여다보거나,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한다.


이렇게 적으니 좀 변태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그만큼 좋아서 처음 글자를 본 원시인처럼 마음에 든 구절을 한참 관찰한다.


'아름다운 것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구절은 마음에 박힌 것보다, 머리를 빡! 때리는 글이었다.


가끔 글을 읽다가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뭔 말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 핸드폰 사진 첩에는 소망이 사진들로 가득하다.


너무 많아서 클라우드에 옮겼는데, 클라우드에도 너무 많다고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이다.


강아지를 키우거나, 키웠거나 한 사람들은 알 거다.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그냥 눈으로만 담을 수 없다는 걸.


십몇 년을 본 잠자는 모습이지만, 늘 새롭고 짜릿하게 귀엽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건데 가슴 뛰게 사랑스럽다.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떻게 서든 담아내기 위해 핸드폰을 항시 가까이에 두고 다녀야 한다.


소망이 사진 말고도 두 번째로 많은 사진이 있다.


그것은 풍경 사진이다. 주로 하늘이나, 나무, 풀을 찍은 사진들인데.


소망이 와 산책을 나가면서 찍은 것들이다. 매번 산책을 하는 집 주변이지만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르다.


늘 보는 나무이고 풀이지만, 그 순간마다 들어서는 햇살과 하늘은 달랐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을 서둘러 찍었다.


오버를 해서 말하면, 그날의 공기에 따라서도 사진이 다르게 찍히는 것 같다.


새벽에 한바탕 비가 오고 이른 아침 젖어있는 풀을 찍은 사진과, 같은 시각에 이른 아침 서늘한 공기 속 풀을 찍은 사진은 엄연히 달랐다.


남들은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달랐다.


소망이를 담아낸 것처럼 풍경들도 그렇게 담아내었다.


소망이는 나에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게 해 주었다.


거북목으로 핸드폰만 보며 걸어 다녔던 나를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앞만 보고 걸어가던 나를 고개를 돌려 나무 아래 피어난 꽃을 보게 해 주었다.


매번 똑같이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 소소한 변화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소망이가 떠나고 더 이상 이른 아침 서둘러 산책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자 나의 사진첩은 소망이 와의 마지막 산책 사진을 끝으로 오랜 기간 새로운 사진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멈춘 나의 사진첩 속 과거의 소망 이를 보며 울기만 했다.

소망이 와 마지막 산책


"소망아 가자!"


잘 걷다가 말고 소망이는 자주 멈춰 섰다. 그것도 아주 아주 한참을.


산책을 나갈 때마다 항상 소망이에게 한 말이다. 가자. 좀 가자. 제발 좀 가자고.


줄을 당겨도 버팅기는데 그 작은 몸에서 어찌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결국 항상 이기는 건 소망이었다.


땅 냄새, 풀 냄새, 꽃 냄새. 물론, 다른 강아지의 오줌 냄새를 맡는 거긴 하겠지만.


풀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듯 한참 냄새를 맡고서는 어딘가를 또 한참 바라본다.


대체 어디를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망이가 바라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은 나도 소망이의 시선에 맞춰 쭈그리고 앉아봤는데, 어쩔 수 없는 인간이어서 그런지 도무지 소망이가 바라보고 있는 게 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멈추고, 머물면서 발견하게 된 것들이 있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만들고 있는 새와 풀 숲 안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와 비를 맞으며 어디론가 기어가고 있는 지렁이와 달팽이.


나도 어느 순간 다른 것들을 구경하다가 소망이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긴 경우도 있었다.


다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책에서 저 구절을 읽었던 순간으로 돌아가면.


나는 저 구절을 읽자마자 바로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봤다.


시커먼 밤이 내려앉은 하늘이었다.


별 한 조각 반짝이지 않은, 블랙아웃 같은 하늘이었지만. 나는 두리번거리며 하늘을 바라봤고,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적막한 거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하늘은 어떤지, 오늘 햇살은 어떤지, 오늘 나무와 풀들은 어떤지 들여다봤다.


그런데 걸음을 멈추는 건 못했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사진 찍는 건 더 못했다.


'아 저거 찍어야 하는데..'


속 마음은 걸음을 붙잡아 세우려 했지만, 내 발은 그냥 지나치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버릇도 생겼다.


주변 의식 하나만큼 절대 하지 않는 나였는데,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려는 찰나에 지나가는 아저씨를 의식하는 나 자신을 보고 적지 않게 쪽팔렸다.


예전에는 소망이가 있어서 쉬웠는데, 그리고 멈춰서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혼자가 된 지금은 그냥 호구가 되었다.


소망이가 떠나고 슬프고, 우울해진 줄 만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하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용기가 없어진 것이다. 소망이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소망이가 보여줬던 세상을 다시 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더욱 그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쁜 하늘들을 지나치며 싱그러운 녹음이진 풀들을 지나치며 나의 마음속 용기 젠가의 용기들을 쌓고, 쌓아 올렸다.


그리고 드디어 걸음을 멈춰 섰다.


소리를 켜고 보는 걸 추천합니다


쉬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들 한다.


멈추면 그만큼 남들보다 뒤처지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멈출 줄 아는 사람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꼭 아름다움을 보는 거에서 발견을 하라는 건 아니다. 아름다움이 보일 수도 있고, 들릴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자연과 동물 말고는 딱히 없어서, 길을 걷다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깨닫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눈으로만 담기엔 아쉬워 핸드폰을 꺼내 사진으로라도 담아내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소중하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