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난 남들보다 조금 걱정이 많아

우주는 넓다.

by 밍장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한 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게 나를 위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의 형편은 아주 못 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맘 편히 할 수는 없었다. 그림을 배우고 싶어 미술 학원을 다니고 싶다 말했지만, 엄마는 돈만 많이 나가고 돈은 못 번다며 아쉽게도 미술 학원을 다닐 수 없었다. 어렸을 적 엄마는 나에게 돈에 대한 푸념을 자주 했다. 나가야 할 돈에 대한 걱정들을 깊은 한숨과 내뱉을 때면 나 또한 갑갑하고 속상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안 좋아질지 망정, 더 좋아지지는 않았던 집의 형편과 변하지 않는 엄마의 돈 걱정에서 자라난 나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차피 공부도 못 했고, 대학교를 가봤자 돈이 더 나갈 테니 차라리 그럴 바엔 그 시간에 돈을 버는 게 났겠다 생각했다. 담인 선생님은 성적이 못나도 대학은 갈 수 있다며 나를 설득시키시려 했지만, 나는 이미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학을 가지 않았다.


"후회 안 해."


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처음엔 당당했다. 조금은 두렵기는 했지만, 남들 학교 다닐 때 돈을 벌면 남들보다 빨리 돈을 모을 수 있고, 보험비와 생활비를 직접 부담하면, 엄마의 걱정도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름 큰 계획과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생일이 지나자마자 입사한 회사는 노가다였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노가다이지. 사실, 스파 브랜드 판매장이었다. 꽤 유명한 브랜드이었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잠실로 출퇴근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생각 없고, 막무가내였고, 너무 어렸다. 그 쥐꼬리만 한 돈이 그 당시에는 되게 큰 금액이라고 생각을 했으니. 어려도 너무 어렸고, 몰라도 너무 몰랐다. 힘든 만큼 몸은 망가져 갔다. 살도 70kg 넘게 쪘고, 남자 옷을 입어야 될 정도였다. 일이 힘들고 피곤하다 보니 점심 휴게 시간에는 자고, 밤늦게 집에 오면 하루 치의 양 무자비하게 다 먹어치웠다. 매일 먼지 더미에 있다 보니 피부는 피부대로 안 좋아졌고, 사람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단 3개월 만에 망가져버린 내 꼴을 보고 수습기간만 채운 채 일을 관두게 되었다. 그 뒤에 바로 또 비슷한 일을 잠깐 하다가 또 관두게 되었고, 한 달 정도 쉬어가던 중에 엄마의 제안으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집 근처 소아과에 취직을 하게 되어 일을 하게 되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스케줄 근무인 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단순했고, 반복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간호사 팀장의 너무 유난스러운 성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년이란 기간을 코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 일도 관두게 되었다.


다 말하지 못한 일들도 많지만, 각 회사마다 퇴사의 이유는 달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상황은 매번 똑같았다.


빨리 포기하는 것.


퇴사의 이유는 후회하지 않지만, 매번 빨리 포기해 버리는 나 자신에게는 후회가 된다. 어쩌면 그 힘듬의 순간을 버텼으면, 퇴사의 이유가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름 크게 세웠던 과거 나의 계획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건 돈이 아니라, 걱정들 뿐이다. 어렸을 적, 차 안에서 엄마가 한숨과 함께 내뱉었던 그 걱정들을 지금의 내가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후회까지 더해서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 이 최악의 듀오를 지독하게 느끼며 지내고 있다.


결국은 나의 문제였다.


아무리 주변의 환경과 참견일지라도,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이기적이게 남을 탓하고 싶다가도, 그렇게 한다면 진짜 이기적인 건 나였기에. 그 감정들이 반복될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실망감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죽기는 귀찮았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면, 그 정도로 죽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아직은 더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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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낀 건, 사회에서 나를 이해하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거였다. 앞자리가 1이었다가 2로 변하는 순간, 어른이란 이유로 이해의 폭을 확 줄여버린다. 반대로 어렸을 때는 어린이라는 이유로 이해의 폭이 넓었다. 법적으로 20살은 성인인 게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좁혀진 이해의 폭에 다소 억울하고, 혼란스러웠다. 마치, 무제한으로 목숨이 있었던 게임이 하루아침에 목숨이 3개밖에 없는 게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날 이해 못 하는 부모님에게 버럭 짜증을 내며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언성을 높였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날 이해 못 하는 사회를 향해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얌전히 고개를 조아리는 어른이 되었다. 만약 그러지 않는 다면, 최악의 상황으로는 법으로 심판을 받을 수 있으니까.


어른은 그런 것 같다. 서바이벌 게임의 목숨이 3개밖에 없는 유저.


생각 없이 나섰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오래 살고 싶으면, 조용히 눈치를 봐가며 적과 멀어져야 한다.

아이템이 아무리 많아도 동등하게 목숨은 3개뿐이다. 그러니 아이템이 많은 유저들은 적과 멀리 떨어져 갖고 있는 아이템들을 누리며 조금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고, 반대로 똑같이 목숨은 3개이지만, 아이템들이 별로 없는 유저들은 적의 동태를 살피며 열심히 아이템들을 모으러 다니면서 게임에 살아남기 위해 버틴다.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도 비슷한 것 같다.


주어진 목숨과 생존하는 세상은 동등하지만,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냐 없냐에 차이. 거기서 더 나아가 아이템을 얼마큼 가지고 있냐 없냐에 차이인 것 같다.


위에 말한 게임 세상에 현재 내 상황을 비유하자면, 나는 다른 아이템은 없고 목숨 3개 만을 가지고서 적과 멀리 떨어진 채 나만의 아지트에서 꽁꽁 숨어있는 유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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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보다 조금 걱정이 많다. 그만큼 생각도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에 유명한 교수나, 연예인이나, 성공한 사업가도 아닌 나의 말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엄마의 차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라디오에서 우주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광활한 우주에 대한 얘기가 잠깐 흘려 나왔는데. 나는 그 순간, 피식 미소가 지어졌었다. 걱정과 고민들로 무겁게 쌓여있던 마음이 훌쩍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무량무변한 우주 속, 그리고 지구, 그리고 지구 안에 대한민국,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 경기도, 그리고 그 경기도 안에 광주시. 더 수많은 걸 파헤치고, 또 파헤쳐야 겨우 겨우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우주에서 나의 존재는 어떠한 숫자로 가리킬 수 없는, 안갯속의 입자. 그리고 그 입자 안에 입자. 또 그 입자 안에 입자. 그보다 더 작디작은 생명일 뿐일 것이다.


내가 보이는 범위 안에서만 살아온 나였기에, 내 삶의 주인공이었기에. 우주에서 엑스트라 조차 될 수도 없다는 나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여태 나는 하찮은 걱정과 미천한 고민들로 작고 작은 나를 가지고 괴롭히고 있었구나. 이 초란 한 삶의 의미를 뭐라도 된 것 마냥 끙끙 앓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엄연히 나의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유가 물론 복음을 위한 일을 하기를 바라서인 것도 있지만,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주어진 하루와 모든 생명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누리기를 바라지 않을까.


현실은 현실일지라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당장 이번 달에 청구해야 할 돈들과 밀린 돈들이 그게 나를 작게 만들지 못한다. 나의 일상을 집어삼킨 우울한 현실을 믿지 마라. 그걸 믿는 순간, 그 현실에 잠기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은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되, 이 우주에서 바라본 나의 존재가 어떠한지 가끔씩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생각하면 뭐 하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통해 조금은 걱정과 고민을 덜어내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크게 바라보자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작고, 우주는 넓다.


나의 걱정은 많고, 현실은 냉정하다.


현실은 나의 걱정을 들어주지 않는다, 현실은 내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 준다.


나 자신은 꿈을 꾼 만큼 커진다.


꿈은 내가 돌을 던진 만큼 커진다.


그리고 현실은 커진 꿈보다 작아진다.


그리고 다시 꿈은 현실을 삼키고 나를 이룬다.



너무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말들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추상적이다. 물리도 추상적인 것을 통해 의문을 던지고 연구를 통해 현실로 밝혀내는 것처럼. 우리는 현실이지만, 고로 추상적이기도 하다. 나의 말들이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내뱉지 않고 삼키기만 한다면 좋은 것, 나쁜 것 다 삼켜 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여태 삼키기만 했다. 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른 채. 그렇게 삼키기만 한 결과,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삼켜낼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생각해 낼 수도 없고, 멈춰 버렸다. 그 시간은 참 지독하게 괴로웠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서든지 뱉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꿈을 향해 돌을 던져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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