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흘러나오는 노래에서 그러더라 도망가자고.
얼굴도 모르고 포근한 목소리와 잔잔한 음악소리에 얹은 말뿐인데 목구멍이 꽉 막혀오더라.
그 노래 가사가 마치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어.
정말 어디로든, 어떻게든 나랑 같이 도망을 가 줄 것만 같아서.
난 제주도가 가고 싶더라.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만 가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
푸르고, 고즈넉한 자연이 있는 곳을 천천히 거닐면서.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면서.
그냥.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정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과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만을 생각하면서.
그냥 소소한 생각들을 하는 거야.
이따 근처에 맛있는 빵집에 가보자.
줄이 길면 어쩌지.
그래도 일단 가보자.
제주도에 있는 맛있는 집들도 다 찾아서 가보자.
줄이 길면 아침 일찍 나와서 가보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 들려서 츄르 몇 개 사자.
숙소 근처에서 만났던 길고양이한테 줘야지.
피하면 어쩌지? 가만히 손 내밀고 있으면 와주지 않을까?
공기 좋다.
바람도 적당하고, 기온도 딱이고.
조용하다.
흘러가는 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면서.
오로지 나의 움직임만을 생각하면서.
나는 4분 31초 동안 제주도로 떠나는 거야.
이런 상상들을 그리면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절대 떠오르지 않는 거야.
오로지 내가 편안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만 떠오르는 거야.
길거리에 싱크홀이 생겼는데, 그 근처에 누가 가고 싶겠어.
다들 멀리 피해서 가지.
얼마나 무섭겠어.
그 근처 어느 거리에 또 싱크홀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찬가지인 것 같아.
나는 지금 싱크홀이 생긴 곳을 피해 멀리 도망가고 싶은 거야.
그곳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살고 싶어서.
나를 지키려고 도망가는 거야.
너무 불안해하지 마.
언제든, 어떻게든 도망갈 수 있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괜찮아.
그리고 당연히 불안할 수 있는 거야.
싱크홀이 생겼는데 두렵지. 그래서 불안한 거지.
싱크홀이 생긴 이유도 나 자신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야.
그냥.
내 안에 흐르고 있던 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단단히 다져놓았던 땅이 힘을 잃고 주저앉은 것뿐이야.
무너진 빈 공간은 다시 채우고 잘 다지면 돼.
내가 약한 것도 아니야.
오히려 내가 너무 강하고 단단하게 잘 버티고 있어서.
지금 생긴 구멍이 더 크게 느껴지고, 무섭게 느껴지는 거야.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