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찌질한 신세 한탄

by 헌화가




" 아이고, 사랑 사랑! 그놈의 사랑타령!

언니야! 소리 뻥뻥 지르는 건 속이 후련해서 좋은데, 이놈의 사랑타령 반복해서 연습할 때는 짜증이 확 올라온다.

사랑땜에 잠 못 자고, 이별땜에 죽네사네...

너무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거 아이가?

아... 옛날 사람들 와 이라노?

뭔 사랑에 이래 목을 메노?

나가면 지천에 여자, 남자밖에 없는데...

이별하면 그냥 다른 사람 만나면 되는 거 아이가?"

민요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연이 언니는 내 말을 듣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시작한 민요가 내 삶에 뿌리내린 지 어느덧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고 나는 변했다.


책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며 사건의 흐름만 쫓아 다니기에 바빴던 내가,

좋든 싫든 민요의 가사를 꾸준히 접하고, 음미하며 노래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거나 사극을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나 생활상들에 더 눈길이 갔다.

나는 그들의 삶과 인생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마음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 시절...

젊음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은 너무나 짧았으며,

헤어짐은 얼마나 가슴을 후벼 팠을 것인가...


와중에 바람막이되어 줄 남편마저 없는 여성들의 삶은 도대체 어땠을까?

그들에게 이별이란 단순한 헤어짐만은 아니었겠지?

이별... 이별...

배부른 날보다 굶는 날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 억지로 청해 보는 잠... 꿈속에서도 굶주렸을 것이다.

낮에 아이가 싸움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옆집 여편네는 '애비없는 후래자식'을 외치며 머리채를 휘어잡으러 수시로 들락거렸을 테지.

늦은 밤이 되면, 초가삼간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남정네들로 인해 무법천지가 되어버리는 수가 허다했을 것이다.


그런 시간과 공간 속에 던져진 그녀들에게 사랑... 사랑?

그 사랑은 내가 아는 그런 사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안식처는 물론,

줄줄이 딸린 자식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밥줄이고,

눈 오는 겨울 든든하게 쌓여있는 뒷마당에 장작이었으며,

낡은 초가집 아랫목의 따뜻한 이불이자,

바람 술술 들어오는 허술한 사립문의 튼튼한 자물쇠였을 것이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어쩌다 하루정도 자식들에게 한 끼 배불리 먹이며 웃음 지었을 그들의 노래...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삼키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낮은 외침이었을 그들의 노래...

고달픈 삶의 현장마다 자연스레 흘러나왔을 그들의 노래...


그것은 누군가의 찌질한 신세한탄이 아니었다.


삶의 소리였고,

살아있는 소리였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소리다.




민요는 수많은 시간을 힘겹게 뚫고 나온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장엄한 이야기를 그 소박함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치, 지름 3500km의 어마무시한 크기의 달을 뱃속에 그득히 품고 있는 작은 달항아리처럼...

10년 전에 아무렇게나 내지르던 사랑타령 중 한 소절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불러본다.


[ 창문을 닫쳐도 숨어드는 달빚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사랑이 달빛이냐 달빛이 사랑이냐

텅비인 내 가슴엔 사랑만 가득 쌓였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보일 듯이 아니 보이고 잡힐듯하다 놓쳤으니

나 혼자 고민하는 게 이것이 모두가 사랑이냐

오호 한평생 허무하구나 인생 백 년이 꿈이로다. ]




정선아리랑 oil on canva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