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노래가 아니다. 호러다! 호러!
이야... 오늘은 어떤 노래를 배울까?
입을 뻥긋뻥긋 벌리며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노래한다.
[ 동원도리~ 편시춘하니~ 일촌의 광음이 애석하다~ ]뭔 소리고? 일단 따라 부르고
[ 장안의 호걸이 어쩌고저쩌고~ ]따라 부르고, 또 따라 부르고
[ 에라~ 놓아라~ 아니 못 놓겠네~ ] 오! 알아듣는 말
[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
순간...
나는 두 글자에 꽂혔다.
뭐? 능지?
내 영혼은 텔레비전 앞으로 날아간다.
어릴 적, 사극을 보면 귀신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대역죄인이 나온다.
그는 밧줄로 네 마리 말들에게 사지를 묶인다.
등을 후려치면 말들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려버린다.
" 으아! 저게 뭐야? 저 사람은?"
"죽지" 내 물음에 엄마는 시크하게 대답한다.
"저게 뭔데?"
"능지처참"
아... 그 끔찍한 능지처참을 평화로운 민요교실에서 만나다니......
[ 에라~ 놓아라~]
놓으라고 하잖아,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쫌 놓아라!
[ 아니 못 놓겠네~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
죄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이 도대체 노래 속에 왜 나오냐고... 왜!
나는 손가락 다섯 개를 차례대로 '꽉꽉' 물어서라도 붙들고 있는 그 손을 놓아버리게 하고 싶었다.
수업을 마친 후, 무엇을 저렇게 까지 붙잡고자 하는지 궁금해졌다.
뭔지 좀 알아보자.
[ 동원도리 편시춘하니 일촌의 광음이 애석하다 ]
검색!!
봄동산에 복숭아꽃, 자두 꽃이 잠시 피었다 이내지니, 잠깐의 시간도 아깝고 슬프다.
[ 세월아~ 봄철아~ 오고 가지 마라~ 장안의 호걸이 다 늙어간다 ]
뭣이라? 늙기 싫어서 흐르는 세월을 붙잡으려고 저런다고?
젊음 때문에?
[ 이팔청춘에 어쩌고저쩌고... 청춘 홍안을 어쩌고저쩌고... 아까운 내 청춘 어쩌고저쩌고... ]
민요에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그리고 ' 세월이'와 ' 봄철이'도...
[ 세월아~ 봄철아~ 오고 가지 말아라~ ]
그래... 젊음 좋지...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무슨 스토커야? 이 정도면 집착이다. 집착!
그때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은 흐르고,
새까맣던 내 머리에도 흰머리 카락이 하나 둘 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1년이 '홀랑'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에 비해 수명, 젊음의 기간, 모든 것이 훨씬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시간이 아쉽고 아깝다.
그들이 누릴 수 있었던 젊음의 기간은 얼마나 짧았을까?
나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다.
시간은 흐르고,
흰머리의 개수가 더 많이 늘어났다.
안 보이던 주름들이 '뿅' 하고 생겨나서 거울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뒤돌아 서기만 해도 1년이 '휙휙'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나도 이런데......
세월은 빨리 지나가고, 고운 청춘은 너무 짧고, 하루하루 버티기는 힘들고,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을 그들은 오죽했을까?
이제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민요가사 한줄한줄이 가슴에 와닿는다.
[ 세월아~ 봄철아~ 오고 가지 말아라~ ]
제발......
옛사람들의 시간과 삶. 그리고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던 젊었던 나를 반성한다.
( 흑흑, 용서해 주세요 ㅠㅠ )
시간은 흐르고,
지금은 눈만 깜박거려도 1년이 '쌩' 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민요 가사 속에 담긴 그들의 삶을 더욱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노래한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들은 젊음을 노래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청춘을 노래한다.
민요가사에는 젊음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언제나 청춘이다.
가만히 보자.
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한다.
청춘.
푸를 청, 봄 춘, 푸른 봄...
청춘은 꽃이 아니다. 푸른 봄이다. 새싹으로 뒤덮인 봄.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부드러운 푸른 새싹.
그것은 에너지다. 생명의 힘이다. 살아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얼어붙은 땅이 아무리 무겁게 짓눌러도 그 여리고 부드러운 잎으로 뚫어 버리고, 솟아나버리겠다는 용기와 의지다.
그것은 내공이다.
그것이 청춘이고 푸른 봄이다.
청춘은 젊음이 의미하는 껍데기의 팽팽함이나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그것에게는 젊음이 중요하지 않다.
그것에게는 젊음을 피워낼 수 있는 가능성, 오직 그것만이 주인공일 뿐이다.
존재가 품고 있는 근원적인 가능성.
의지, 힘, 열정, 용기......
이제야 알겠다. 그것이라면,
능지...
이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과도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옛사람들은 그것의 가치를 꿰뚫어 보았구나!
그들은 진정으로 삶을 살았고 그것의 가치를 마른 몸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서서 바라보았구나!
나는 그들을 알아보았고, 다시 마음속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토록 깊은 성찰에서 저렇게 겸손하고 소박한 노래를 당당하게 피워낸 그들은 누구인가?
누구보다 약해 보이던 그들은 누구인가?
때 묻은 흰 옷을 입고, 굶주린 얼굴에는 마른버짐 가득 피어있던 그들은 누구인가?
모든 것을 싹 - 쓸어버리듯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닥쳐오던 삶을... 존재를...
그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 내었던 연약한 그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그들은 청춘... 푸르른 봄.
온몸이 찢겨서라도...
온몸을 찢어서라도...
지켜야 했던 푸른 봄.
청춘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