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집은 늘 북적였다. 우리 오 남매와 아버지 어머니 일곱 식구 외에도 수시로 찾아오시는 시골 친척 분들과 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는 분들 그리고 방학을 하면 방학이 끝날 때까지 지내다 간 이종 사촌 오빠들까지 우리 집은 객식구가 끊이질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식구들의 먹거리와 빨래만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감자로 반찬을 하는 날에는 커다란 양재기에 감자를 가득히 담아서 깎아야 겨우 한 끼 식사가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
양재기 하나 가득 감자를 담아서 놋숟가락 몇 개와 함께 우리들에게 건네주시면 우리는 당연한 듯 받아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감자를 깎았다.
내 나이 고작해봐야 7.8살이었으니 감자가 내 주먹보다 더 컸었다. 큰 감자를 움켜잡고 놋숟가락으로 박박 긁으면 껍질이 벗겨지면서 감자가 속살을 드러냈는데 작은 손에 큰 감자를 올려두고 껍질을 벗기는 일이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놋숟가락으로 무 껍질도 벗기곤 했었는데 성장을 하면서 그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하기 싫고 귀찮은 것으로 바뀌었다.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나오면서 관리하기에 불편한 놋수저는 그런 일에 필요한 도구로 점점 바뀌었다.
그렇게 힘들게 채소의 껍질을 벗겼는데 언제부터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 어떤 시기에 감자를 깎는 칼이 생겨나면서 주방 문화가 달라졌다. 이 칼로 쓱쓱 밀면 껍질이 벗겨지는데 크게 위험하지도 않다. 참 신기한 도구이다. 심지어는 이 칼로 병에 붙은 상표도 떼어내기도 한다. 너무나 익숙해진 감자 깎는 칼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탄탄하게 자리매김을 하면서 숟가락으로 감자를 깎던 일도 놋숟가락과 함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