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벅대는 일이 자주 생기면서
마음이 자꾸만 아파온다.
아이디어 뱅크라 불렸었던 머릿속은 뿌연 연기로 차 오르는 것 같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 진다.
' 아냐, 이건 안 되는 일이야. '
인정하기 싫지만 치매 직전까지 와 있단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이젠 모두가 두렵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26살에 결혼을 해서 두 아이 출산하고
워킹맘으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시댁에 가서 봉사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서울과 청주를 오갔던 나의 젊은 시절.
나라는 존재는 잊고 사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내가 그 기억들을 지워가고 있다는 것이 서러웠다.
모두가 그렇듯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엔 아직은 그 길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변해야 한다.
기록을 남겨야 하고 그간의 은둔 생활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일찍이 알았으니...
평소 적극적이지 못했던 내가 남편에게 졸라서 여행을 가고
남편 눈치 보느라 가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참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허락이 아니라 통보다.
남편에게 말했다.
꼬물이적 친구들을 만나면
올챙이 마냥 꼬물꼬물 헤엄만 치면 된다.
살면서 갖춰야 하는 수많은 것들에서 벗어나
가벼운 말과 몸동작으로 그들과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다.
특히나 그 순수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난 올챙이다.
뒷다리도 앞다리도 없는 꼬물꼬물.
그 꼬물이들과 수영을 배우고 내 모습이 변하기까지의 과정 속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크다.
외로운 객지에서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명분으로 만난 내 친구들.
그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긴 도로 위
작은 차 안에 홀로 앉아 생각에 머문다.
이 꼬물이들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이 꼬물이들은 변하지 않을 거야.
돌아오는 길에서 졸지 말라며 건네준 친구가 준 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소리를 지르듯 노래를 불렀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그 친구들 틈에 나도 있었다.
다음에도 있어야지.
어둠 속에 두 줄기 빛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주었고
난 그 안내를 받고 집으로 왔다.
" 건아, 미안해. 하루종일 혼자서 있었지? 얼른 밥 줄게. "
17살이 된 이젠 우리 집 어르신이 내 앞에서 뱅글뱅글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