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Dec 14. 2023

14  이동순 시인의 '쥐구멍 '

쥐구멍

이동순 시인


풀밭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발에 밟히는 어린 풀들이 서걱서걱

얼음소리를 냅니다

아, 풀들 사이에 쥐구멍이 하나 있군요

그런데 쥐구멍 둘레에는

서리가 모두 녹았습니다

구멍 속에는 쥐가 여러 마리 있나 봐요

쥐들이 밤새도록 내쉰 입김이

따듯한 기운이 되어

구멍 가의 찬서리를 모두 녹였군요

그 때문에 쥐구멍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깥 일도 전혀 모르고

서로 몸 기대고 잠들어 있을

쥐구멍 속을 들여다봅니다.




<시시콜콜> 따뜻한 게 좋아지는 겨울이다. 그래서 이 시가 눈에 들어온다. 시는 술술  읽히면서도 그림이 그려진다.  시인과 동행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서리 내린 풀밭에 유독 한 곳만 서리가 녹아 있는 걸 발견하고 그 안에 쥐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시인의 관찰이 놀랍다.


어쩌면 시인은 뒷짐 지고 산책이나 하자고 들길을 휘영휘영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대단한 발견을 하고 하찮은 미물의 삶에게까지 관여하는 시인은 숭고한 자연주의자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 싶다.


 쥐들이 밤새 추위에 떨며 웅크리고 있는 모양을 떠올리면 나도 자연스레 어릴 적 그때가 그립다. 윗목에 놓아둔 자리 끼가 어는 추운 겨울밤 형제들이 서로 바짝 붙어 이불 속에서 곤한 잠에 빠져들던 바깥은 칼바람 소리로 난무했지만  서로 몸 기대고 잠들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따뜻했던 겨울밤의 기억이 오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문태준 시인의 '가을 모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